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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20. 2023

버릇

  버릇이야말로 언제나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지만 타인이 없이는 알아차리기 힘든 것이다. 나에게 평소 어떤 버릇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도 주로 타인이고, 나의 버릇을 알아차려 주는 사람도 결국은 타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것 같아 보여도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 결국은 타인으로 인해 나 자신을 더 알아가게 된다.      


  친한 친구와 역할을 바꾸어 각자 서로가 되어 메시지를 주고 받곤 한다. 나는 매번 놀란다. 이게 정말 내 말투라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되물으면 친구는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응. 이게 너의 말투야. 나는 정말 따뜻하게 말한 것 같은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쌀쌀맞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아주 조금의 교집합만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어제는 동생이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 왔다. 서울에 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잠깐 들러 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정말로 내 동생과 생김새가 안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런 말도 많이 듣는데, 어제 함께 모인 친구들이 말하길 ‘느낌’이 있단다. 대체 무슨 느낌? 난 정말 딴 판이라 생각하는데! 그런데 웃긴 건 거기 모인 친구들이 전부 남매였는데 자기 누나, 오빠, 동생이랑 닮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그 사람들의 형제, 자매 사진을 봤는데 분명 판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았을 때의 나는 확연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다.     


  얼마 전, 친구를 통해 나의 버릇을 하나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치로 나타내길 좋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우리 학교에 친한 친구 몇 명이야?’ 라고 물으면 ‘친한 거 기준이 뭔데?’ 하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몇 명이나 ‘친한 친구’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나에게 이런 습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날 친구가 ‘률이는 기준을 참 좋아하네.’ 해서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나와 함께 존재했던 버릇인지는 모르나 어쨌거나 나는 28년 만에 타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또 하나 찾게 되었다.     


  친구와 동생이 대화를 하던 중 친구가 동생에게 물었다. ‘술 잘 마셔?’ 동생이 대답했다. ‘잘 마시는 기준이 뭔데요?’ 순간 친구와 나는 마주 보았다. 둘 다 하려고 하는 말은 같았다. 

와, 진짜 남매 맞네.   

   

  동생은 친구들 앞에서 나를 칭할 때 ‘우리 누나’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너무 흔한 명칭이라 버릇이라 말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경상도 억양과 동생만의 말투로 말하는 그 ‘우리 누나’는 조금 특별해 버릇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타인에게 동생을 설명할 때 ‘우리 성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로 묶여있어서 듣기가 좋은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이 글을 쓴다. 남매가 함께 가지고 있는 버릇. ‘우리’ 남매는 인정하기 싫지만 서로를 닮아있고 버릇을 공유하며, 타인이 버릇을 발견해주는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 누나랑 우리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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