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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y 24. 2023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호기로움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의 과거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인간은 본래 절대로 허락되지 않은 것에 욕심을 내는 법이다. 중력을 거슬러 날고자 하고, 허락되지 않은 우주의 공간에 끊임없이 발을 들여놓듯이. 나도 그렇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과거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절대 가질 수 없고, 알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세계에 나라는 존재가 전혀 없던 시절. 나는 그 갈증을 어릴 때의 사진으로 해소한다.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세숫대야 하나 쯤에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사랑했던 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 중 가장 가슴 깊이 사랑을 느꼈던 순간은 함께 누워 우리의 어릴적 사진을 봤던 밤이다. 나는 마음 속에서 퐁퐁 솟아나는 사랑을 느꼈다. 사진 속에 존재하는 저 개구진 남자아이의 현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다지만 나는 그날 밤 마음에 피어난 감정은 분명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나는 앞선 글에서도 그렇듯,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는 만큼 그 이면에는 불안을 쫓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투자든, 운동이든 인간은 언제나 불안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헤맨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짜릿함과 자극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자극이 순간순간 일상을 살게한다. 활력이 돌게 하기도 한다. 클라이밍 같은 운동을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맨손으로 벽을 타는 행위. 얼마나 불안한가? 패러글라이딩은 어떻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아무리 끊임없이 나와도 문경활공랜드는 늘 예약이 꽉 차 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정의를 내렸다. 인간은 불안을 사랑한다. 어쩔 수 없이, 아무리 괴롭다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사랑한 불안. 나는 그 불안을 요 근래에는 주로 연애에서 충족했다. 직업이 안정적이라 투자는 공격적으로 한다던 직장동료의 말을 조금 바꾸어 보자면, 나는 직업이 안정적이라 연애에서 늘 자극과 불안을 추구했다.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 그의 어릴적 사진을 보고싶어 하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의 지나간 시간을 궁금해 하는 것.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아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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