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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n 21. 2023

나에게 딱 맞는 것

인생은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는 여행

  아무리 현란한 광고를 봐도 크게 혹하지 않는다. 이제 영상물로만 봐도 저 옷이 나에게 어울릴지, 안어울릴지 대충은 느낌이 온다. 저 화장품의 색깔이 내 얼굴을 밝혀줄 색인지 더 어둡게 할 색인지 얼추 알겠다. 20대 초반부터 숱하게 해 온 시행착오로 나는 이제 나에게 맞는 것을 많이 찾게 되었다. 이것이 20대 후반이 되면 가질 수 있는 여유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이 까만 편이라 꽤 긴 세월동안 밝은 색, 알록달록한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살았다. 중학교 때, 초록색 가디건을 좋아해서 자주 입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얼굴이 까매 어울리지 않는다며 놀렸다. '그런가?' 싶어 그 이후로 한참을 초록색 옷을 입지 않다가 다시 입기 시작한 것이 20대 중반. 쨍한 초록색은 여전히 잘 안 어울렸지만 채도가 약간 빠지고 탁한 느낌의 초록색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아무 날도 아닌데 함께 입고 벚꽃놀이에 가자며 커플 맨투맨을 사왔다. 그렇게 아무 날도 아닌데 옷을 사온 것이 너무 고마워 그 옷을 매일매일, 심지어는 자면서도 입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색은 나에게 너무나 안어울렸다. 역시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나는 그 맨투맨의 색깔을 보자마자 나에게 안어울릴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딱 한 번, 벚꽃놀이갈 때 입고는 다시는 입은 적이 없다. 그 색깔은 파스텔톤의 분홍색 맨투맨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분홍색을 비롯한 모든 파스텔 톤 옷을 멀리했다. 


  작년 여름, 문득 파스텔 톤 하늘색 블라우스에 꽂혔다. 어쩌면 나에게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스텔 톤은 안맞는데.'하고 머리에서는 브레이크를 살짝 걸었지만 '안 어울리면 반품하자.'는 생각으로 일단 샀다. 그런데 웬 걸, 까맣던 얼굴이 갑자기 하얘졌나 싶게 잘 어울렸다. 파스텔톤이라고 다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구나. 20대 후반, 나는 나에게 딱 맞는 색깔을 찾았다. 


  수영장에서 옆 레인 수강생들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언니 어제 왜 안왔어? 언니 뒤에 가야 딱 맞는데, 안 와서 힘들었어.' 사람이 자신에게 '딱'맞는 것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까? 딱 맞는 속도를 찾은 것 만으로도 그 수강생은 이미 여유가 있는 수영 고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와의 경험이 쌓인다는 것. 나와의 여행 속에서 나는 열심히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왔고, 그래서 나는 28살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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