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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l 06. 2023

진짜 내가 게걸스럽게 먹어?

아니 그건 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식탐이 많은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한 입만’이라고 하는 것이 참 싫기도 했다. 그 한 입을 주기가 싫어서 허겁지겁 입에 넣기 바빴다. 나이를 먹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 내 욕심껏 한 번에 왕창 음식을 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니 내가 가진 음식들이 더 이상 나에게 부족하지 않게 되었고 또 소화기관도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해 자연스레 식탐이 줄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밥을 먹다 보면 내 식탐이 평균보다는 심한 편이라는 것을 느끼며 산다.   

 

  식탐도 있고, 먹는 속도도 빠른 나는 ‘누가 안 뺏어 먹어. 천천히 좀 먹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덩치에 비해서 많이 먹는 편이라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복스럽게 먹는 것이 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으나, 허겁지겁 먹는 것이 게걸스러워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단점의 뒷면은 언제나 장점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복스럽게 먹는 것이 그렇듯이.  

    

  게걸스럽다는 단어를 들으면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전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이 생각 난다. 함께 소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밑반찬으로 단호박이 나왔다. 나는 단호박을 아주 좋아하는데, 당시 너무 배가 고프고 허기가 져서 참지 못하고 단호박 샐러드를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아직 소고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 앞에 앉아있던 전 남자친구는 얼굴을 구기며 ‘또 이거 먹었다고 소고기는 먹지도 못하고 배부르다고 할거지? 음식을 왜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어.’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게 지는 옷에 다 흘리고 입에 다 묻히고 나보다 훨씬 더럽게 ‘쳐’ 먹는데 저렇게 말한게 너무 괘씸하다.) 어쨌거나 나는 당시에 사랑을 했기에 고치려고 노력해 보겠노라 대답을 했다. 눈치를 보느라 소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그 식사 자리가 끝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다. 먹는게 쳐먹는걸로 보이면 끝난거라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내 식탐은 아빠를 닮은 것이다. 아빠와 함께 다녔던 해외 여행에서 나는 식성 만큼은 아빠를 꼭 닮은 것이라 확신을 했다. 음식이 맞지 않아 물만 먹어도 구역질을 하고, 또 배가 고프면 나란히 예민함이 최고치를 찍었으니 말이다. 식당에 가면 말도 안하고 일단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 바쁘다. 우리의 식사 자리는 대부분 침묵으로 지속되다가 배가 어느 정도 차면 그제야 약간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친구의 ‘한 입만’을 싫어하던 나의 모습은 분명 아빠의 젊은 날일 것이다.

 아빠는 식탁에 간식거리가 남아 있으면 일단 본인 입에 집어넣기 바쁘고, 고기는 핏기만 겨우 가면 바로 젓가락을 가져다 대는 사람이지만, 유일하게 나에게는 식탐을 부리지 않는다. 갈비탕을 먹다가도 가장 큰 고기는 내 그릇에 덜어주고, 나와 밥을 먹을 때면 갈비보다는 나물을 한 젓가락 더 먹는다. 왕성하던 아빠의 식탐도 내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진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괜히 코 끝이 찡하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내가 허겁지겁 그리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 새끼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고 한다. 내일 모레 서른을 앞두고 ‘선생깨나’ 되었다지만 아직도 밥을 안먹을 때가 제일 밉단다. 나는 아빠 앞에서는 괜히 더 과하게 허겁지겁 먹는다.      

  누구는 게걸스럽다 하고, 누구는 사랑스럽다 하는 나의 먹는 모습. 사실 먹는 모습 같은 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깊이, 그 사람의 기쁨이 내게도 기쁨이 되는지의 여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의 넓이. 뭐 이런 것들에 따른 것이 아닐까? 


  그러니 혹시 누군가 당신에 대하여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평가한다면 조금쯤은 이렇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건 그 사람이 나를 덜 사랑하는 것일 뿐,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야.' 그리고 언제나 동전의 양면이 하나이듯,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것 또한 순식간이라는 것을 함께 마음에 새기자.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누군가에겐 복스럽게 먹는 것이 되듯이 말이다. 나를 덜 사랑하는 타인의 비하 섞인 평가에 너무 마음 쓰지 말자. 어차피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귀엽다고 하니. 


  지금의 남자친구는 말한다. 

‘제발 편하게, 허겁지겁 입에 다 묻히고 먹어줘! 그러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아.’

아빠랑 먹은 저녁. 회 먹을 때 한 번에 세 점씩 집어 먹어도 '아이구, 잘 먹네' 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 뿐일 거다. 
넘치게 받은 식판 사진을 보내주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는 아빠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남자친구.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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