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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29. 2021

죽은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엄마는 나의 힘!

  엄마는 3월이 되면 산수유나무를 꺾어 집에다가 꽂아 놓았다. 엄마가 나고 자란 양촌마을 입구에는 굽은 시골길을 따라 심긴 산수유나무가 해마다 꽃을 피운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들에서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특히 좋아했다. 3월 어느 날 산수유나무로 꽃꽂이를 하려고 몇 가지를 꺾어다가 차 뒷좌석에 둔 그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는 3월이 되면 산수유나무를 꺾어다가 집에다가 꽂아놓는다고 했다.


  지난 주말에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사실은 추석 이후로 몇 달을 못 갔다. 그 곳에 가는 것이 아직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큰 맘 먹고 가기는 싫은 곳이다. 엄마한테 가는데 큰맘을 먹어야한다는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그냥 가볍고 아무렇지 않게 또 눈물 없이 다녀오고 싶은 곳이다.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산수유나무가 만개를 했다. 산수유나무에 피어있는 노랗고 작은 꽃 뭉치를 보며 외할머니를 그리워했던 엄마를 그리워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 정도 흘러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똑같이 3월이었다. 외할머니를 땅에 묻었던 3월과 외삼촌을 땅에 묻은 3월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추운 듯 춥지 않은 날씨와 언 땅을 깨우는 봄비, 젖은 흙, 만개한 산수유 꽃. 


  엄마에게는 3월의 산수유 꽃이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자신만의 의식이었다. 나는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 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나를 단단하고 뜨겁게 하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것을 엄마도 바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엄마의 글이 그랬듯 나의 글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한웅큼 더 깊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이래서 엄마도 글을 썼나보다. 

  또 나는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서 노래를 한다. 엄마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볼 때 정말로 행복에 겨워했는데 가끔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 행복에 겨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마치 엄마가 되어 나를 기특히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또 나는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엄마가 추천해주는 책은 신기하게도 내 취향과 가치관에 딱 맞았는데 이제는 추천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더 노력을 해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찾아 읽어본다.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을 해 봐야할 때인 것 같다. 

  나는 엄마를 추억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작은 일에 감사하고, 또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도 그것을 발견하고 만끽하는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엄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쯤 흙이 되었을까? 흙이 되었다면 산수유 꽃으로 다시 피었을까? 엄마는 3월에는 산수유가 되었다가, 4월에는 봄비가 되었다가, 또 7월에는 도라지꽃이 되어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추억하는 나만의 의식으로 나의 일생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강하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기형도는 질투를 자신의 힘이라 했던가, 엄마는 나의 힘이다.

엄마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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