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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ug 04. 2023

공항에서 며느리 캐스팅 당하기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새벽 1시 출발이었다. 공항에서 라면도 먹고 과자도 먹고 면세점도 한바퀴 둘러보았지만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다. 공항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엽서를 샀다. 두개의 가게가 있어서 둘 다 둘러보았는데, 먼저 들어간 곳은 약간 비쌌다.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 사진이 실린 것으로 한 장 샀다. 달랑 한장에 1000텡게(3000원정도)였다. 지나고보니 좀 이상하다. 처음에는 한 장에 500텡게 부르더니 내가 엽서를 고른 뒤에 가격을 올려 부르는 거다. 내가 외국인이고 하니 그냥 바가지 씌우려고 비싸게 부른 것 같았다. 바가지도 추억이지 뭐!


여기도 있을까? 싶어 옆 가게에 가서 엽서가 있냐 물으니 이 곳에서는 12장 묶음에 2500텡게(7500원정도) 였다. 이런!! 여길 먼저 왔어야 했는데 !! 약간 후회를 하며 엽서 한 뭉치를 또 샀다. 남은 시간, 이 엽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 생각이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낙서도 좋아하고, 노트나 수첩에 이름을 적는 것도, 달력이나 메모장에 잊으면 안되는 것들을 적는 것도 좋아한다. 편지 쓰는 것은 취미라고 해도 될 정도로 수시로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았었다.


공항에 앉아 보딩을 기다리며 책가방을 책상삼아 무릎 위에 올렸다. 엽서를 꺼내고 펜을 들었다. 잔잔하고 편지쓰기에 좋은 음악도 틀었다. 가장 예쁜 엽서를 골라 가장 친한 친구 소윤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예쁘고 마음에 드는 엽서라 하면 보통의 나는 남을 주기보다 내가 갖기를 선택하는 사람인데. 남에게 주기를 선택하게 되기까지 나는 소윤이에게 배운 것이 많다. 베푸는 마음, 나누는 마음,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등.


잔뜩 감성에 젖어 편지를 쓰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60대로 추정)무리들의 시선이 자꾸 느껴졌다. 애써 모른 체 하고 편지를 마무리 하는데 말을 걸어오신다.


한국사람이세요?


그렇다고 대답하니 거의 기립박수를 칠 기세로 “요즘 젊은 사람이 이렇게 빼곡한 손 글씨로 엽서를 채운 것은 처음 본다”며 칭찬을 쏟아내셨다. 이렇게 칭찬받을 일 까진 아닌 것 같아 머쓱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엽서 한 장 선물로 드릴게요!” 하고 엽서 뭉치에서 엽서를 한 장 꺼내 드렸더니 “내가 딸만 둘이라 참 안타깝다며 아들이 있었으면 딱 이런 사람을 며느리삼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아저씨의 친구분들 무리 중 딱 혼기가 찬 아들이 있는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 아들은 어떠냐며 말을 시작하셨다. ”우리 아들은 지금 영국에서 회계사를 하고 있고 나이는 만으로 딱 서른이고 혹시 생각 없으시냐“고. 그리고 주섬주섬 이럴게 아니라 연락처를 드린다며 종이를 찾는데, 종이가 없으신거다. 그 때 내 옆자리 아저씨께서 내가 드린 엽서를 그 아저씨에게 건네며 ”자, 여기다가 적어서 줘.“하셨다.


이렇게 받게 된 연락처. 나도 웃기고 아저씨들도 이 상황이 웃기신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결혼을 한다면 카자흐스탄에서 식을 올리자, 아들이 이번 가을에 한국에 오니 그 때 꼭 연락을 달라, 이미 남자친구 있는데 우리끼리 이러는 거 아니냐 등등.. 농담에 농담을 얹어 몇마디 주고 받다보니 보딩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를 탔는데 아저씨 무리 중 한 분이 내 자리로 다시 오셨다. 아까 미처 아들 신상을 못 준 것 같다며 아들의 생년월일, 이름, 대학, 직업 같은것을 빼곡히 적어 다시 내게 주시는거다. “꼭 연락 주세요!!” 하시면서ㅋㅋㅋㅋㅋㅋ

새벽 비행기라 정신이 없어서 집에 도착해서야 두 쪽지를 다 읽어보았는데 주소가 서울시 강남구 어쩌고 저쩌고였다. (강남에서도 딱 비싸보이는 아파트) 두번째 쪽지에는 태어난 시간까지 적힌게 제법 웃기다 ㅋㅋㅋㅋ


나를 예쁘게 봐주셔서 이렇게 연락처를 주신것은 너무도 감사하지만 강남구에 본적을 두신 영국법인 회계사 남편은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어찌.... ... ㅎㅎ..


혹시나 저의 시아버지(?)가 되실 뻔 한 분.. 혹은 그 친구분들이 이 글을 보실수도 있으니 저의 마음을 적어봅니다. 저의 무연락에 서운해 마셨으면 좋겠어요.성악 전공이라 하니 노래를 듣고싶다 하셨는데, 그 날이 새벽시간대에 사람도 많은 공항이라 제가 못 불러 드렸어요. 언젠가 우연히 다시 뵙는다면 장소에 상관 없이 멋지게 노래를 한 곡 부르겠습니다 ! ㅋㅋㅋ 저에게 좋은 추억과 재밌는 에피소드를 선물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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