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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ug 21. 2023

스물 여덟에 다니는 고등학교

스물 여덟에 하고 있는 나의 고등 학교생활.

그 속에서 기분이 좋은 순간들

  

1. 복도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학기 초에 수행평가 안내를 하며 이번 학기 가창 제재곡은 ‘오 솔레미오’임을 알려주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니 싫어한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두 키를 낮춘 곡인데도 불구하고 높다고 난리. 무려 다섯 키를 낮춘 버전으로 수행평가를 봤다. 시험 내내 ‘가사를 못 외우겠다’, ‘1절만 보면 안되냐,’ 불평불만이 가득이더니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복도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께 벨라 꼬자~ 나 요르 나 따에 솔레~’ 흐뭇. 왠지 기분이 좋다.      


2. 체육대회 교가 제창 시간

  체육대회가 끝나고 폐회식에 교가 제창 시간이 있었다. 고교학점제 탓에 3년 내내 음악을 배우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 전교생의 반 정도만 교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1학기 내내 한 소절씩 끊어 부르기, 2배속으로 음원 듣고 가사 받아 쓰기 같은 게임으로 교가를 열심히 공부했더니 아이들이 노래를 싹 외웠나보다. 수행평가가 끝난지 몇 달이 지난 상태였는데도 가사도 까먹지 않고 고래고래 열심히 부른다. 미술반 학생들은 신기하게 쳐다본다. 기분이 좋아 열심히 동영상을 찍으면서 나도 교가를 따라 불렀다. 기특하고 예쁘다.     


3. 창틀에 걸려있는 걸레와 고무장갑

  우리 반은 지각을 하면 남아서 교실 청소를 한다. 3번 지각하면 한 번 청소. 단골 미화원들이 있다. 3번에 한 번 청소인데 1-2주에 한 번 꼴로 청소를 했더니 이제는 알아서 자기 지각 횟수를 체크하고 알아서 남는다. 청소를 시키면 입이 댓발 나오고 타격감이 있어야 ‘흠, 이제 청소 하기 싫어서라도 지각을 안하겠군.’ 할텐데 이건 뭐 서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청소를 하니 이게 벌인지 봉사인지 우정 쌓기인지 모르겠다. 퇴근 못하고 청소 시키는 내가 제일 벌 받는 것 같다. 아직 지각 3회가 안되었는데도 친구 따라 청소를 하고 가겠다는 아이들도 빈번히 있다.

  ‘너는 3번이 아직 안됐는데?’

  ‘괜찮아요. 대신 이번에 청소하면 지각 1번 한 거 없애주시면 안돼요?’

  분명 손해 보는 장사임을 아는데도 그렇게 한단다. 애매하다. 우루루 같이 남아서는 사이 좋게 웃고 떠들면서 열심히 빗자루질을 한다. 걸레까지 깔끔하게 널어놓고 가는 아이들이 예쁘다. 이게 벌 청소가 맞나 싶지만 널려있는 걸레와 고무장갑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다.     


4. 귀여운 글씨체

  나와 함께 하는 마니또 게임에서 들키지 않으려고 왼손으로 쓴 글씨체, 칠판 구석에 누가 쓴지 모르는 귀여운 글씨체들.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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