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밥을 했다. 밥솥을 열자 뜨거운 열기에 힘을 잃은 콩나물이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먼저 위쪽에 있는 콩나물을 건져내고 밥을 한 번 섞어준 뒤 다시 콩나물을 넣어 조금 더 뜸을 들였다.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쪽파를 넣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듬뿍.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가득 먹을 수 있다. 바삭하거나 쫄깃한 식감보다 입에 넣자마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음식들이 좋다. 취사 완료 10분 전부터 풍기는 구수한 콩나물 냄새에 마음부터 편안해지는 밥상이다.
추석에 본가에서 할머니가 직접 짠 참기름을 가져왔다. 참기름이 묻은 소주병에는 할머니 손길이 묻어있다. 삼촌이 산에서 직접 주운 밤, 작년에 담근 묵은지, 제사 지내고 남은 과일들도 가져왔다. 어떻게 먹을까,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을 해본다.
언젠가 본가에 남은 나의 가족들이 모두 명을 달리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참기름을, 묵은지를, 산에서 주운 밤을 얻어올 수 있을까? 가는 데는 순서 없다지만 으레 나보다는 30년, 40년, 50년 이상을 더 살았던 그들이 모두 떠난다면 나의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참기름 병을 쌌던 신문지를 정리하면서, 밤을 담아온 비닐봉지를 버리면서, 묵은지를 담아온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젊은 날의 패기로 혼자서 온 지구를 다 누빌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나보다는 늦게 세상을 떠날 나만의 가족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약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은 혼자 먹는 콩나물밥이 눈물 나게 만족스럽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 내가 끔찍이 사랑하는 어느 누군가가 내가 만든 콩나물밥을 맛있게 먹어준다면 내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 30대가 코앞으로 다가오며 나의 인생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