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Oct 18. 2023

가상의 친구 하수미

  나는 내가 가진 물건이나 가까운 사람 등에 자주 애칭을 짓곤 한다. 태초에 나의 가상 친구 ‘하수미’가 있었다. 피아제의 이론 중 아동 발달 어느 단계에 가상의 인물이나 친구를 만드는 단계가 있다. 어느 단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교육학을 배우며 어린 시절 내 친구 ‘하수미’가 적당한 과학적 이유 아래 존재했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남동생과 나는 항상 하수미와 함께 놀았다. 시골에서 자라 놀거리가 많지 않았고 농사일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릴 적 과수원에서 했던 표범 놀이(보리밭을 가르면서 말처럼 뛰거나 표범처럼 뛰어서 서로 잡는 놀이), 집에서 자기 전 마다 했던 비단뱀 놀이(이불을 동그랗게 말고 그 사이를 기어서 통과하는 놀이)같은 것을 할 때면 있지도 않은 하수미를 챙겼다. 항상 하수미가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도 가끔 누군가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꽤나 커서까지 동생과 하수미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하수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대체 어디서 온 존재인지 둘 다 모른다고 했다. 혹시나 엄마는 알까 싶어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아지매’라는 말에서 나왔단다. 무슨 이유엔가 그 단어에 꽂혔고 경상도 말로 ‘아지매’의 억양과 똑같은 ‘하수미’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인물이 먼저인지 이름이 먼저인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은 조금만 지나면 추억 같은 것이 된다. 머리에 남고 가슴에 남아 앞으로의 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겨우 작년 이맘때의 일도 추억처럼 애틋하다. 지금 이 순간도 내년의 나에겐 조금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어 있겠지. 가상의 친구와 보냈던 시간들, 이제는 다 추억이 됐다. 

작가의 이전글 콩나물밥과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