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노량진 원룸은 방음이 잘 안됐다. 복도가 좁아 앞집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화장실에는 두 개의 문이 달려 있었는데 왜 났는지 모르는 나머지 문 하나가 뜬금없이 복도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그 문은 현관문 같은 두꺼운 문이 아니라 그냥 방에 달려 있는 문 같은 얇은 문이었어서 더 방음이 안됐다. 복도에 사람이 지나다닐때면 씻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릴까봐 조심을 하며 살았었다.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도 그 집에 살 때였다. 북향으로 창이 난 원룸이라 집에 햇볕 한 줄기가 귀했다. 얇은 커튼 한 장만 쳐도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잘 안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더 많이 울었다. 방음도 안되는 그 집에서 엄마가 떠나고 참 많이도, 크게도 울었다. 하필이면 현관문을 바로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침대가 있어서 나의 울음소리는 밖으로 잘도 새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울음소리가 타인에게 방해가 될까 걱정할 여력이 없었다. 어찌나 외로웠던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현관 밖 어떤 누군가가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선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봐주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끝끝내 혼자 우는 것이 외로웠던 나는 가족들 곁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외로움이라곤 몰랐던 나는 3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가 가족들과 부대끼며 매일의 일상을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눈물과 멀어지게 되었다. 임용 공부를 마치던 날 합격의 눈물 딱 한 번. 아직도 나는 그 순간이 약간은 꿈 같다. 본거지와 먼 지역에 발령을 받게 된 나는 7개월간의 본가 생활을 마치고 다시 혼자 살게 되었다.
나의 지난날에는 너무도 외로웠던 나머지 현관 밖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엄마의 죽음이 서러워 얼굴도 모르는 이의 장례식에 가 넋 놓고 울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분명 그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가을 햇볕이 뜨거울만큼 쏟아지는 창문 아래 앉아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런 날도 오기는 온다. 인생은 그런 날과 이런 날이 뒤섞인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