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 아닌 꽤 여러 날, 어린 날 뿐 아니라 지금 이날 까지도 그런 날이 있을 만큼 이 감정은 나에게 익숙한 거였다. 그 어떤 날 나의 감정이 분명히 기억이 난다. 함께 기뻐해야할 이야기인데, 왜인지 듣기가 싫은 이야기. 내 친구의 남자친구 이야기.
아주 친한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때 만나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친구. 하나의 몸과 하나의 머리로 같은 24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싶을 만큼 이 친구의 일상은 타인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에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는 친구다.
나는 이 친구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적이 있었다. 기분이 나쁜건 아닌데 마냥 좋지도 않은, 아니 분명 친구가 좋다고 하니 좋긴 좋은데 순도 100퍼센트로 기쁜 마음이 안 드는 것 같은, 묘한 이 기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친구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가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몰랐던 것을 친구의 남자친구는 너무 오래전부터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남자친구와 한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와의 결혼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할 때. 이런 마음이 왜 드는 것인지, 이유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오다 어젯밤 갑자기 도착한 친구의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이런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이 타인과 가까워지고 깊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으레 타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친구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간다. 왜 친구의 행복에 순수하게 행복할 수 없는 것인지, 나는 나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일종의 질투를 하고 있었다. ‘질투’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친구의 남자친구 자리는 결코 내가 채워줄 수 없는 자리이고, 우리는 우리만의 관계에서 서로를 충분히 아끼고, 챙겨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가족과 배우자가 우리의 자리를 모두 채워버리지는 않을까, 먹고 사는 문제로 우리의 관계가 세월에 풍화되어 점점 멀어지는 날만 앞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 친구의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또 서운한. 아,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낸 그 후부터 친구는 줄곧 내게 말해왔다.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너무 기쁜데 또 마냥 좋지만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너무 찌질하게 느껴진다고. 그 찌질함까지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라는 편지를 읽고 나는 친구만큼 속이 깊지 않은 나를 탓했다.
친구의 남자친구, 속 좁은 나는 그가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