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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n 27. 2021

술 한병에 명태포

처음 맞는 엄마의 기일

이틀 뒤면 엄마의 기일이다.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할지 두 달 전부터 고민을 했다.

예부터 원래 근본있는 양반 집은 제사상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것이 아니라 간소하고 소박하게 차린다고 했다.

그렇게 화려한 제사상을 차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 괜히 그런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지난 명절에 아빠, 삼촌과 성묘를 돌며 차렸던 제사상을 기억해내고 싶었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나서 삼촌한테 물어봤다.

아빠한테 물어봐도 되긴 되지만 전남편에게 죽은 전 부인의 제사상 차리는 법을 물어보기가 썩 내키지 않아 삼촌한테 물어봤다.

  

술 한 병에 명태포라니.

순간 저 단어가 왜 그렇게 쓸쓸하고 초라해보였는지.

그리고 걱정 말라는 삼촌의 말은 또 왜 그렇게 따뜻한건지 왈칵 눈물이 났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하루에 세 번 곡기를 채워넣는다.

엄마는 짧다면 짧은 50년을 살았지만 엄마가 살아생전에 먹었던 끼니들을 합하면 못해도 수십, 수만끼는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엄마에게는 술 한병과 명태포 하나면 충분하다.


그만하면 됐다고 해도 더 좋은 것을 차려주고 싶다.

그리고 딱 명태포와 술 한 병만큼만 소박하고 처연하게 슬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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