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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Sep 10. 2021

벌초

오늘 오전에 벌초를 다녀왔다. 벌써 엄마가 없는 두번째 가을이다. 뻔하고 관용구같은 말이지만 정말로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우울이 찾아올 때 마다 나는 힘껏 버텼다.


나는 생일을 주로 엄마랑 보냈었는데 올 2월 내 생일쯤에 거의 인생의 밑바닥을 봤을 정도로 힘들었다. 매일 밤마다 숨이 헐떡거릴정도로 울다가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다. 집안 곳곳에 붙여놓은 엄마 사진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벽에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놨었는데 아침마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뗄 용기도 없었다. 뭔가 죄책감이 느껴졌다. 삼 주 정도 그렇게 지냈나, 한강대교를 건널 때 마다 출렁이는 물이 예전같아보이지 않을 때 정신과에 찾아갔다. 갔더니 예약이 꽉 찼다고 2주 후에 오란다.


무료로 운영하는 근처 상담센터에 가게 되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제가 그 사진을 떼도 되겠느냐고 여쭤보았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잠시 슬픔을 접어두는 것도 좋다고 했다. 나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뗐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주로 외면하기로 했다. 장롱 깊이 입지 않는 옷을 넣어두듯이, 엄마와 관련된 생각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음에 장롱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리움이나 슬픔, 예기치 못 한 괴로움 같은 것이 내게 슬금 다가오면 얼른 장롱 문을 열어 슬픔을 넣은 뒤 꼭 닫아두었다.

내가 조금만 괜찮아지면 그 때 널 꺼내서 마음껏 슬퍼해줄게.


그 방법은 효과가 좋았다. 가슴에 묻어두고 산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들 마음에 이런 슬픔 하나 쯤은 품고 사는 것이려니,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일부러라도 잊으려고 하며 살다보니 진짜 괜찮아졌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2주 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다시 친구를 만나고, 밥을 챙겨먹고, 밤이 되면 자고 낮이 되면 일어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다시 매일을 바쁘게 살다보니 나는 점점 괜찮아졌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두번째 가을이 되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마음이 참 그렇다. 성이는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바로 자기 방으로 안가고 내 방에 들러서 날 붙잡고 술주정을 하다가 자는데 가끔 엄마 이야기를 한다. 엄마 산소에 가자거나, 술을 먹으니 엄마가 더 보고싶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럴 때 마다 잠이나 자라는 말만 반복하며 성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척 한다. 나는 감히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도 못하겠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아니 그런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견딜 수가 없어진다. 이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이 슬프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산소에 올라가는 길에 외할아버지를 마주쳤다.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잠시 외할아버지 댁 1층에 들어가보았다. 방학마다 상주에 가면 엄마와 함께 지내던 공간이었다. 10박스가 넘던 엄마 짐과 옷, 장롱 3개를 가득 채웠던 엄마의 바느질거리, 천, 미싱, 신발 같은 것들이 없었다. 정리 해야지 해야지 하고선 용기가 안나서 계속 못하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외할아버지가 다 태우셨나보다. 엄마가 입고 쓰고 만지던 그 짐들을 내 손으로 다 태우고서, 며칠이나 지나야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죄송하고 고맙고 다행이기도 하고 그랬다.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나는 오늘의 슬픔 또한 장롱 안에 넣어두려 한다.

슬픔은 짧게 우울은 가볍게



벌초하러 예초기 매고 올라가는 홍성ㅋㅋ 듬직하긴 한데 42살 쯤 된 거 같아보인다ㅜ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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