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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Dec 10. 2021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엄마가 맺어준 인연

아직도 작가님과 했던 첫 통화가 귀에 쟁쟁하고 그 날의 공기가 살갗에 미지근하다.  엄마가 죽기 하루 혹은 이틀 전 이었으니 2020년 7월 8일 혹은 그 언저리겠지. 엄마가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 내용이었다.


작가님은 참으로 엄마가 맺어준 인연이다. 엄마의 글을 알아봐 준 사람이며, 엄마라는 사람을 멋지게 포장해 이 세상에 내놓아줄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가 브런치에서 꽤나 유명세를 타며 빵 떴을 때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었다. 엄마는 어떤 기준으로 출판사를 골라야할까 고민하다가 김경희 피디님 혹은 작가님을 만나뵙고 난 뒤 다른 고민 없이 바로 여기랑 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님은 단박에 파악해주셨고,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아 출판사와의 첫 미팅에서까지 자랑을 했던 딸의 전국노래자랑 영상에 마음 다해 감동을 해주신 분이다.


엄마가 에어로빅 회원들이랑 찍은 단체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며 엄마가 이 중에 몇 번째로 나이가 많아 보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엄마가 제일 늙어보인다고 했다. 엄마는 왜냐고 물었고 나는 답했다. 엄마 눈빛이 너무 늙었어. 엄마는 그래도 좋다고 했다. 에어로빅 회원들 사이에서 단언컨대 가장 늙어보인다 해도, 세상의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두 눈에 박아넣은 그 나이듦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지혜이고 강인함이고 자유이고 또 사랑이었다.


나는 작가님의 눈에서도 그것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미간에서. 작가님의 미간은 웃을 때 빼고 아주 미세하게, 항상 찌푸러져있다.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계실 때에도 본인의 이야기를 하실때에도, 홍대 2번출구 앞 통유리창을 끼고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드실때도, 연남동의 간판도 없는 엘피바에서 맥주를 마실 때에도. 나는 작가님의 눈썹과 눈썹 사이의 힘겨루기, 그것이 꼭 그렇게 느껴진다. 삶에 대한 관용, 자유, 뭐 그런거? 글을 완성하고 작가님께 보낼 계획인데 지나치게 내 맘대로 해석해버린 것 같아서 민망하다. 여튼 저는 그래요 작가님, 너무 존경합니다ㅎㅎ


엄마 장례식에 오신 작가님은 당신의 아버지도 희귀암으로 돌아가신지 이제 1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시며 나를 위로했다.

아버지와 한평생 사이가 소원했는데, 아버지를 인터뷰한 내용으로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출판사의 제안에 일주일에 한두번 카페에서 녹음기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셨단다. 그렇게 극적인 화해에 성공했나 싶었는데 곧바로 아버지는 희귀암 판정을 받으셨고 짧은 투병생활을 거쳐 돌아가셨다는거다. 이번에 출간된 책이 바로 그렇게 탄생하게 된 책이다. 300쪽이 넘는 이 책을 온통 아버지와 작가님 둘만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낭만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야기 하나 하나 진심이 가득하다. 나에게 허락된 엄마와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나도 300페이지 쯤은 거뜬하게 채울 수 있었을까?


아직 책을 덜 읽었다. 눈물이 나서 한번에는 도저히 못 읽겠다. 눈물이 나려고 하면 최대한 우리 엄마 생각은 빼고 읽어보려 노력한다. 그 중 <암스테르담에서 융프라우까지>부분은 눈물이 나서 화장실을 두 번 다녀온 뒤 마저 읽었다.


[215쪽]

-그림을 좋아하는 아빠는 유럽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 (중략)  때는 '연세도 있으신데  그리  곳까지 가보고 싶어하실까?'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스위스는 커녕 어디에도 보내드리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수술을 받은 이후 아빠는 기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인간의 신체는 강인하면서도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불과 1 사이에 아빠가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TV 보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뿐이었다./



나는 22  엄마와 유럽에 갔었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서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파리의 루브르에 가서 사람들 틈에 껴 모나리자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고 작가님의 아버지께서 1년간 투병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눈에 더 들어왔다. 분명 작가님은 융프라우에, 암스테르담에 아버지와 함께 가보지 못한것에 대한 쓸쓸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전혀 다른것이 부러웠다. 우리 엄마도 1년 아니 1달이라도 투병생활을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218]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내내 아빠의 눈빛이 생각났다. 함께 유럽의 곳곳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미술관에도 가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떠난 아빠에게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아빠, 암스테르담이든 융프라우든 이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훨훨 가실 수 있는거죠


몸시 고대하고 주위를 빙 둘러보았지만 대답이 들릴리가 없지 않은가? 어느새 멀리서 동이 터왔고 창밖으로는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의 며칠을 떠올리면 몹시도 춥고 쓸쓸한 느낌이 든다./


엄마도 암스테르담이든 융프라우든 훨훨 갔을까? 혹시 작가님의 아버지와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1년간 내 눈빛도 부쩍  늙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다. 아주 커다란 무엇인가를 견뎌낸자만이 가진 강인함 또 부드러움 그런것들을 내 눈에 박아넣었으니. 작가님처럼, 우리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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