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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Dec 29. 2021

아빠, '누에 똥 기리듯 한다' 가 무슨 뜻이야?

아빠 이야기

  내가 사는 곳은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도연안길이고, 우리 마을은 집성촌으로 주민들의 90프로는 홍씨들이다. 간단히 말 해 앞집은 5촌, 뒷 집은 8촌 친척의 친척들까지 모이는 설 명절 같은 날에는 10촌까지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그런 마을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큰 집이라 제사가 있는 날이면 30켤레는 되는 신발이 현관 안에 다 자리할 수가 없어서 현관을 활짝 열어 놓곤 했다. 선비 정신이 투철한 아빠는 요즘도 두루마기와 갓을 쓰고 해마다 문중 시사(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에서 축문을 읽는다.


  아빠 말에 따르면 한 곳에서 500년 이상 자리를 지킨 가문은 매우 드문데, 우리 가문이 그렇다는거다. 아빠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가득하고 말 그대로 여기서만 500년을 지켜서 그런지 내가 알아 듣지도 못하겠는 사투리를 많이 쓴다. 문경시는 원래 점촌시와 문경군으로 분리되어있었고 내가 사는 곳은 점촌시였던 쪽이라 여기 사람들은 으레 문경군이었던 곳을 문경이라 부르고 점촌시였던 곳은 점촌이라 부른다. 편의상 앞으로 아빠 말투를 '점촌 말'이라고 칭하겠다.


  중학생 이후로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반복하며 아빠랑 붙어 지낼 시간이 없었고 점촌에 내려와서 살 일도 없던 터라 요즘 나는 이 '점촌 말'이 익숙하면서도 아주 새롭고 또 재미가 있다. 가족들이나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구수한 점촌 말로 대화를 하는데 다른 단어 없이 감탄사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찔끔나게 웃었던 적이 많아서 이걸 글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부터 생각이 나는 대로 점촌 말에 대한 글을 시리즈로 써볼까 한다. 특히 아빠는 은근히 문학적인 면이 있어 관용어구나 속담을 섞어서 말하는 것에 아주 능숙한데 이게 점촌 말이랑 어우러지면 하루 종일 은근히 생각이 나면서 웃기다. 아빠가 하는 웃긴 말들을 엄마한테 전해 줄 때면 엄마는 나랑 성이, 아빠가 있는 단체 카톡 방에 자기를 초대해달라고 한 적도 있을 정도다.


  남들은 경상도 사투리 하면 대구의 '언니야' 부산의 '오빠야' 같은 귀여운 억양을 떠올리는데 우리 점촌 말은 좀 다르다. 처음 대학생활을 할 때 친구들이 나 보고 북한 말투 같다며 혹시 탈북자 새터민 전형으로 대학을 왔냐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점촌'이라는 지명조차 어쩐지 무진장 촌스럽게 느껴진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점촌 말' 시리즈를 시작 해보겠다.



  이번 년도에 남자친구가 3번 정도 바뀌었다. 나를 집으로 실어나르는 자동차의 차종이 바뀔 때 마다 아빠가 물었다.

   '니는 뭐 남자를 누에 똥 기리듯이 하노?'

  나는 그 말을 도저히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뭐?' 하고 여러번을 되물었다. 그렇게 묻다가 아빠가 하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동생도 나를 '홍누(홍 누에 똥 기리듯 어쩌고의 줄임말)' 라고 부르길래 어원이 무엇인가 하고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이게 누에에 관련된 속담이었다. 표준어로 하면 '누에 똥 갈듯 한다' 라고 쓴다. 누에가 5번 정도 똥을 누고 잠을 자고를 반복하고 나면 누에고치가 완성되는데, 이 때 똥을 누고 나서 돌아서면 또 똥을 누고 또 똥을 누고 한다고 해서 어떤 것을 자주 갈아내는 것을 보고 쓰는 말이라고 한다. 그 속담에 점촌말이 더해져서 '누에 똥 기리듯 한다'는 말이 완성 된 것이다.


  점촌을 가로지르는 하천 중에 반쟁이천이 있다. 남자를 누에 똥 기리 듯 했던 나는 올 해 3명의 남자친구와 모두 반쟁이길을 걸었었는데 하나같이 다 그 뜻을 몰랐다. 어느 날 그 뜻이 궁금했던 나는 아빠한테 혹시 알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점촌에서 500년을 살아온 가문의 큰 집 답게 아빠는 그 뜻을 알고 있었다. 생생함을 위해 앞으로 아빠의 말투는 다 점촌말 그대로 적겠다.


'아빠 반쟁이 뜻이 뭐야?'

'니는 선생이라는 지지바가 그런것도 모르나? 조선 후기 순조 때 홍낙건할배(문경의 유학자인데 우리 조상님이란다.) 일기 '감계록'에 어원이 있는데, 공평에 우리 산소가 있잖아. 거 가는 길에 반쟁이천을 건넜는데 정강이의 반까지 온다고 해서 반쟁이라 했다는 말이 있어.'


하천의 수심이 무릎 아래 정강이의 반까지 온다고 반쟁이천이란다. 하 귀여워라 ! ! 오늘은 날씨가 요 근래 중 가장 따뜻해서 반쟁이 길을 걷기에 딱 좋았다.


초겨울에 찍은 반쟁이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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