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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01. 2022

전 남자친구 이야기: 동정에 대하여

  얼마 전, 헤어진지 두 달 정도 된 전남친에게 새벽 2시에 청승맞은 카톡이 왔다. 연락하지 말라는 답장을 좀 싹퉁머리 없게 했더니 다음 날 욕설이 한 바닥 날아왔다. 다양한 내용이 있었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었다. 술에 취했는지 문장구조가 엉망이었다. 자기보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너에게 베푼 나의 자비와 사랑을 영원토록 감사하면서 살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황당하다가 이내 안쓰러웠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부류는 절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인생에 영원히 깃들 불행에 잠시 애도를 보내며, 동정에 대하여 생각 해 보게되었다.


  그 남자와 만날 때의 일이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늦가을이라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함께 길을 가는데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계셨고 남자는 갑자기 할머니께 가서 만원을 드리고 오는 것이다. 뭔가 마음이 쓰여서 그랬단다. 나는 그 할머니가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연세에 저렇게 폐지를 주우실 정도면 정정하다는 것이고, 꼭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집에 가만히 누워계시기 심심해서 나와서 소일거리를 하고 계시는 것 일수도 있는 일 아닌가? 다시 생각해도 확실히 그렇다. 구찌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고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돌아오는 그 남자의 모습이 제법 역겹다.


  내가 남들보다 동정에 예민한 사람이라 그 모습이 그다지도 싫은 것일 수 있다. 어릴 때 부터 필요없는 동정에 많이 시달렸기 때문이다. 어딘가 모르게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피해의식 때문에 누군가가 순수한 의도로 내게 건네는 사랑과 관심을 왜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정도의 동정은 사랑이겠거니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남자는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자긴 이혼은 정말 아닌 것 같단다. 자기 인생에는 죽어도 이혼은 없다고, 애가 있는데 어떻게 이혼을 하고 사냐며 부부가 됐으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책임감을 가지고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야 된단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런 말을 종종 했다. 물론 그는 그저 본인의 신념을 말했을 뿐이고 우리 부모님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혼이 그렇게 못 할 짓인가 ? 우리 부모님은 책임감이 없다는 말인가? 그 남자를 만나는 동안은 어딘가 그런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도 모르겠는 나의 인생 대서사. 그리고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를 설명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가정사와 어두울 수 있는 내면을 끄집어 내야하는 번거로움 뭐 그런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묘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만나면 만날 수록 아니다 싶은 것을 알았지만 아니 애초에 그 남자가 내게 관심을 표할 때 부터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외면했다. 당시 나는 수험생이었고 막 문경으로 이사를 해서 친구도 없었다. 내 모든 스케쥴에 맞게 움직여주는 친구를 잃기 싫었다. 밥 먹을 친구, 집에 태워 줄 친구, 가끔 커피 한 잔 할 친구, 외로우면 같이 있어 줄 친구 등등 그 아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장점들만 생각 하기로 했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장점이 그 사람의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때에 지속된다. 그리고 그 장점과 단점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돈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상대의 재력이 큰 장점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돈에 관심이 없다면 그 점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드라이브를 가고, 외로울 때 시간을 보내주는 정도의 장점으로 누군가과 깊은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그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 남자는 그랬다. 친구나 지인을 소개할 때면 학벌을 가장 먼저 이야기 했고 이어서는 직업을 말했다. 개중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대부분 친하지 않거나 지인 정도인 사람이었고 속 마음을 터놓는 가까운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본인의 자라 온 삶을 이야기 할 때는 부모님의 직업과 자산에 대해 소개했다. 동생들을 소개할 때는 성적과 앞으로 무슨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람은 본인이 정해 놓은 어떤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우월감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돌아보면 그는 어딘가 번듯한 친구는 한명도 없었고, 본인이 우월감을 느낄  있는 상대만 골라서 만났다. 그래야 삶이 힘차게 굴러가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는 가정환경, 내가 현재 직업이 없는 백수라는 것이 얼마나 그의 삶을 활기차게 했을지 안봐도 뻔하다. 그는 본인의 마음에 들어  에너지의 본질이 동정인 줄도 모르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  남자가 이혼 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고 하는 이유도 뻔하다. 남들이 이혼남으로 살아가는 자기의 모습을 어떻게 볼까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막심하다는 의미이다. 자기 인생이야 어떻게 되든 남들의 평가를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진짜 행복할  있을까?


  험담과 고찰 사이를 넘나드는 이런 글을 죽 늘어놓고 보면 자책의 화살표가 나를 가리킨다. 그런 사람을 도대체 왜 만났을까? 정말이지 경솔했다. 인정한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앞으로는 정말 이런 사람 다시는 안 만날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의 연애도 다신 안할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알았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함께 주말을 보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그리고 외적 기준이나 틀과는 관계 없이 존재 대 존재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젊은 날의 실수, 다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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