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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24. 2022

초보운전


 발령을 받고 집을 구하러 올라갔다. 가기 전에 그쪽 지역 원룸 매물을 직방으로 확인 해 봤는데 매물이 거의 없었다. 그 때 부터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많고 많은 집 중에 내 몸뚱이 누일 집 하나 없을까 싶어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첫번째, 두번째 부동산을 돌아다녀 보는데 웬걸, 이 지역이 원래 원룸 매물 없기로 유명하단다. 게다가 저번주, 저저번주에 유초등 선생님들이 대거 발령을 받아서 방이 더 없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근처 대학교에는 개강이 다가와서 대학생들도 진작에 방을 다 구해버리는 바람에 원룸 매물이 아예 없단다. 부동산을 7개 쯤 들렀을까 매물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도 지쳐서 그냥 돌아오기로 했다.


  교무부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집이 멀어서 사택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 신청을 원하면 서류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근데 사택이 좀 외진 곳에 있으니 차가 없으면 교통편 검색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멀어봤자 얼마나 멀겠어 하면서 찾아봤다. 거리로 치면 가까운데 대중교통으로 오가기에는 완전히 최악이었다. 버스 배차 간격도 엉망이고 사택 건물이 무슨 산골짝에 요양원처럼 박혀있었다. 삼십분 정도 걸어가야 3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돌아오는 길에 아빠랑 좀 싸웠다. 이제와서 생각 해 보니 이게 무슨 인과관계인가 싶어서 좀 웃기긴한데 암튼 둘 다 하루종일 부동산 돌아다니랴, 사택 찾아보랴, 해결책 생각하랴 피곤했던 탓에 잔뜩 예민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집이 없으니 선택지가 없었다. 사택에 들어가고 차를 사기로 했다. 새 차를 사려고 주변에 물어봤더니 요즘엔 반도체 수급이 힘들어서 최소 7달은 기다려야 새 차를 받을 수 있단다. 당장 다음주부터 출근인데 7개월은 못 기다린다. 그래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전 날 아빠랑 싸워가지고 난 차 사러 가지도 않았다. 아빠랑 고모부가 근처 중고차 파는 곳을 여러 곳 둘러보고 그냥 제일 쓸 만 한 것으로 사왔다. 나는 아빠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차를 몰고오기 전까지 내 차 차종도 몰랐다.

  

  내 차가 생긴다는 설렘보다는 그냥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19살에 면허 따고 제대로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는데. 전에 동생 차로 운전 연습하다가 엑셀이랑 브레이크도 헷갈려서 급발진 했는데. 우회전 좌회전도 헷갈려서 역주행 할 뻔 했는데.. 차를 몰고 왕복 8차선 도로를 쌩쌩 달릴 생각을 하니 개학이 무서웠다. 그치만 상황이 이러니 어쩌겠나? 울며 겨자먹기로 운전대를 잡고 차 키 넣고 돌려서 시동 거는 법 부터 다시 배웠다. 근데 아빠한테 운전 연수 받으면서 또 싸웠다. 아빠가 하도 소리를 질러서 길 가에 차 세워두고 그냥 걸어가네 마네 하다가 눈물 꾹 참고 억지로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다.


  삐뚤빼뚤하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앞, 뒤, 옆으로 세 장이나 붙이고 몇 번 연수를 다녀보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비록 시속 50km지만, 겨드랑이 양 옆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랄까? 매일 듣던 음악도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들으니 완전히 색달랐다. 아직 골목 운전이 서툴어서 우리 집 마당에 주차를 못 하고 저 멀리에 세워두고 집으로 걸어와야 하지만 차에서 내려서 삐빅- 하고 차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어른이 된 것같은 기분이다. 깜빡이 실컷 켜 놓고도 끼어들기를 못 해서 직진을 하고 유턴을 못해서 빙빙 돌아가긴 하지만 점점 운전에 적응하고 있다.


  뭐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두려움을 딛고 자유를 얻는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차가 생겼으니 이젠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집은 시골에 있어서  먹고 커피  잔이 생각나도, 다이소에 박스 테이프를 사러 가려고 해도 무조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외출을  때마다 동생이나 아빠 혹은 나를 태워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람들의 시간에 맞춰야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가고싶을  바로 출발하고 내가 돌아오고 싶을  바로 돌아올  있다는게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어색함이 너무나 짜릿하다. 앞으로 평생을, 나는 종종 두렵고싶다.


귀여운 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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