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을 받고 집을 구하러 올라갔다. 가기 전에 그쪽 지역 원룸 매물을 직방으로 확인 해 봤는데 매물이 거의 없었다. 그 때 부터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많고 많은 집 중에 내 몸뚱이 누일 집 하나 없을까 싶어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첫번째, 두번째 부동산을 돌아다녀 보는데 웬걸, 이 지역이 원래 원룸 매물 없기로 유명하단다. 게다가 저번주, 저저번주에 유초등 선생님들이 대거 발령을 받아서 방이 더 없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근처 대학교에는 개강이 다가와서 대학생들도 진작에 방을 다 구해버리는 바람에 원룸 매물이 아예 없단다. 부동산을 7개 쯤 들렀을까 매물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도 지쳐서 그냥 돌아오기로 했다.
교무부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집이 멀어서 사택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 신청을 원하면 서류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근데 사택이 좀 외진 곳에 있으니 차가 없으면 교통편 검색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멀어봤자 얼마나 멀겠어 하면서 찾아봤다. 거리로 치면 가까운데 대중교통으로 오가기에는 완전히 최악이었다. 버스 배차 간격도 엉망이고 사택 건물이 무슨 산골짝에 요양원처럼 박혀있었다. 삼십분 정도 걸어가야 3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돌아오는 길에 아빠랑 좀 싸웠다. 이제와서 생각 해 보니 이게 무슨 인과관계인가 싶어서 좀 웃기긴한데 암튼 둘 다 하루종일 부동산 돌아다니랴, 사택 찾아보랴, 해결책 생각하랴 피곤했던 탓에 잔뜩 예민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집이 없으니 선택지가 없었다. 사택에 들어가고 차를 사기로 했다. 새 차를 사려고 주변에 물어봤더니 요즘엔 반도체 수급이 힘들어서 최소 7달은 기다려야 새 차를 받을 수 있단다. 당장 다음주부터 출근인데 7개월은 못 기다린다. 그래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전 날 아빠랑 싸워가지고 난 차 사러 가지도 않았다. 아빠랑 고모부가 근처 중고차 파는 곳을 여러 곳 둘러보고 그냥 제일 쓸 만 한 것으로 사왔다. 나는 아빠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차를 몰고오기 전까지 내 차 차종도 몰랐다.
내 차가 생긴다는 설렘보다는 그냥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19살에 면허 따고 제대로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는데. 전에 동생 차로 운전 연습하다가 엑셀이랑 브레이크도 헷갈려서 급발진 했는데. 우회전 좌회전도 헷갈려서 역주행 할 뻔 했는데.. 차를 몰고 왕복 8차선 도로를 쌩쌩 달릴 생각을 하니 개학이 무서웠다. 그치만 상황이 이러니 어쩌겠나? 울며 겨자먹기로 운전대를 잡고 차 키 넣고 돌려서 시동 거는 법 부터 다시 배웠다. 근데 아빠한테 운전 연수 받으면서 또 싸웠다. 아빠가 하도 소리를 질러서 길 가에 차 세워두고 그냥 걸어가네 마네 하다가 눈물 꾹 참고 억지로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다.
삐뚤빼뚤하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앞, 뒤, 옆으로 세 장이나 붙이고 몇 번 연수를 다녀보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비록 시속 50km지만, 겨드랑이 양 옆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랄까? 매일 듣던 음악도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들으니 완전히 색달랐다. 아직 골목 운전이 서툴어서 우리 집 마당에 주차를 못 하고 저 멀리에 세워두고 집으로 걸어와야 하지만 차에서 내려서 삐빅- 하고 차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어른이 된 것같은 기분이다. 깜빡이 실컷 켜 놓고도 끼어들기를 못 해서 직진을 하고 유턴을 못해서 빙빙 돌아가긴 하지만 점점 운전에 적응하고 있다.
뭐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두려움을 딛고 자유를 얻는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내 차가 생겼으니 이젠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탈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집은 시골에 있어서 밥 먹고 커피 한 잔이 생각나도, 다이소에 박스 테이프를 사러 가려고 해도 무조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외출을 할 때마다 동생이나 아빠 혹은 나를 태워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 사람들의 시간에 맞춰야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가고싶을 때 바로 출발하고 내가 돌아오고 싶을 때 바로 돌아올 수 있다는게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이 너무나 짜릿하다. 앞으로 평생을, 나는 종종 두렵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