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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24. 2022

전 남자친구에게: 너를 용서한단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 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내 인생의 원동력을 복수나 미움에서 찾고 싶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거나 업신여기는 누군가에게, 혹은 불특정다수의 누군가에게 '나의 성공을 보여주고야 말겠어!' 하는 마음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나라는 몸뚱이를 굴리면 부정적인 기운이 온 몸에 퍼지는 기분이었다. 또 유달리 그런 말에는 동기부여가 잘 안되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랄까?


  나는 언제나 나 자신과 경쟁하며,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인생이 아니라 진짜 나만의 인생을 위해 힘쓰는 인간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내 지향점일 뿐 나의 본성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한 달 동안 종종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지난 글에도 잠깐 썼지만 1월 초엔가 중순엔가 암튼 전 남자친구에게 잔뜩 욕을 먹었다. 미련 그득하게 보낸 카톡에 싸가지 없게 답했더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하루종일 열이 났나보다. 지 번호를 차단 한 것을 알아서 기어코 12살 어린 막둥이 핸드폰을 빌려 꾸역꾸역 나에게 욕 문자를 보냈더랬다. 그 문자 내용엔 이런 말이 있었다. '너 시험 떨어진 거 다 안다. 그러니까 도서관에 얼쩡거리지. 또 공부해야되는데 나 때문에 도서관에서 눈치 보고 다니는 꼴이 불쌍해서 어쩌냐...' 뭐 이런 말이었다. 하아 ~ 용서하고 정말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 이걸 복기하는 과정에서 또 열이 슬슬 나려고 한다.


   희한하지, 발령을 받고 새로 배우는 업무에, 이사에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얼굴이 불쑥불쑥 아른거린다.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떨어졌다고 생각하든 말든, 백수로 손가락 쫄쫄 빨고 있다고 생각하든 말든, 아무튼 간에 내가 아니면 그만인건데 이게   마음이  이런지 나도 모르겠다. 신경 끄고 살아야지 싶다가도 불쑥불쑥  문자가 생각이 나면 내가 이렇게 지금 시험에 붙었다고, 교무실에 앉아서 교직원 메신저를 두들긴다고,   얼굴 앞에 대고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죽겠는거다. 내가 성인이  된걸까?


  차단 목록을 뒤져 그 애 번호를 찾아서 나 합격했다고 문자를 쓰다가도, 스스로에게 어딘가 심히 부끄러워서 창을 닫은 적이 몇 번 된다. 나는 복수를 원동력으로 삼고 싶지 않으며 나의 인생을 타인에게 증명해 내는 것으로 뿌듯하고 싶지 않고 싶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문자 창을 닫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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