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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26. 2022

내가 못하게 된 것들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로 내가 못하게  것들이   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겠다. 주인공 3  한명이 췌장암 4기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데 엄마가 생각나서 보다가 바로  수밖에 없었다. 1~2화쯤 봤을  암으로 죽는다는 설정이 어렴풋이 나오길래 혹시 췌장암일까 예상은 했지만 본격적으로 병명이 등장하고부터는  드라마를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췌장암이 아니라 췌장이라는 단어도  듣겠다. 엄마가 그렇게 떠나고부터는 , 췌장, 이런 단어들을  보게 되었다.  단어만으로도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얹힌 기분이다.


  핸드폰 카메라 앨범을 못 보게 되었다. 2020년 6월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를 자른 엄마 사진, 병원에서 찍은 엄마 동영상, 장례식 과정에 찍은 사진들이 수두룩한 핸드폰 앨범을 못 보게 되었다. ‘2020년의 추억’이라면서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는 핸드폰 기능이 있는데, 가끔 이런 것이 뜰 때면 여전히 괴롭다. 그렇다고 그 사진들을 모두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냥 앨범에 안 들어가고 만다. 외면하며 살다가도 아주 가끔씩 펑펑 울고 싶은 날에는 앨범에 들어가보곤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진을 본 적은 없다. 대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사진에서 멈춘다.


  대둔산에 못 가게 되었다. 지난 여름 친구들과 우연히 대둔산에 갈 기회가 생겼었는데 다른 핑계를 대며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2020년 6월엔가 엄마와 함께 대둔산에 갔었는데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이었다. 엄마와 갔던 다른 곳들에 가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대둔산은 나한테 더 힘들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게 대둔산에 오를 날이 올 수도 있을까?


  죽음을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길에서 장례 차량을 볼 때도, 뉴스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죽었다고 할 때에도, 건너 건너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도, 마음 한 구석이 이상하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을 아주 보통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의 나이듦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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