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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ug 06. 2022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나의 싱가포르 여행

  나는 지금 싱가포르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 안에 있다. 꽤나 큰 배낭 안에 블루투스 키보드와 아이패드, 각종 충전기를 넣고서 내가 앉아 글을 쓸 수 있을 만 한 장소를 찾아 걸어다녔다. 이렇게 꼭 해보고싶었다. 아무 계획 없이 전혀 모르는 곳에 와서 글을 써보고싶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다. 물이 마시고싶어지는 맛? 그래도 가게에 아무도 없어서 좋다. 에어컨때문에 추울 것 같아서 겉옷도 하나 챙겨나왔는데 그러길 잘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을 어디부터 어떻게 꺼내야할지 생각 중.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타자를 두드리다가를 반복. 넘실거리는 생각의 파도에 그냥 나를 맡겨본다.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탔던 때는 20살이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던 겨울, 엄마는 결혼을 하고 바로 중국으로 떠났고(당시 브래들리가 중국에 있는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엄마도 함께 떠난거였다.) 나는 그 해 겨울 그러니까 20살보다는 21살에 가까운 겨울에 엄마를 보러 중국으로 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고 혼자였다. 비행기가 낯설어서, 다른 나라로의 첫 여행길이 긴장되어서, 광저우로 가는 4시간 내내 패딩도 못 벗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의자 등받이도 뒤로 못 넘기고 꼿꼿이 앉아 몇시간을 그냥 왔다. 그게 내 첫 비행의 기억이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은 서툴고 안타깝다.

  이후로 내가 여권에 도장을 찍을 일이 생겼다면 대부분 엄마와 함께였다. 중국, 미국, 유럽, 동남아.. 많이도 다녔는데. 그래서 비행기가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지금은 혼자 인천공항에 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슬픈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랬을까, 공항 가는 길에 자꾸 눈물이 고였다.


  나는 여행지에 항상 읽었던 책을 한 권 챙겨간다. 여행지에 가면 잠자리도, 음식도 모두 낯설기 때문에 익숙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 비행기에서나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좀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다. 한 번 다 읽었던 책이라서 내용을 다 알기때문에 큰 집중력도 필요 없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조금씩 나눠 읽는다. 새로운 곳에서 읽어서 그런지 분명 읽었던 내용인데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지난 글에서 몇 번 썼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몽골 여행에는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챙겼다. 핸드폰도, 전기도 안되는 몽골에서 밤마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7월 31일에 몽골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틀 뒤 다시 싱가포르로 떠나는 것이 나의 일정이었는데,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자꾸 슬퍼졌다.


  몽골에서 외우다시피 읽었던 류시화의 책에서 혼자 걷는 길은 없다는 구절이 생각 났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과거에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 현재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한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길을 걷고 있든지, 혼자 힘겹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가, 당신마저 알지 못하는 연결 통로가 거기에 있다. (중략)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 누군가는 그 길을 걸었으며 , 지금도 누군가는 나처럼 그 길을 걷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처음이 아니라해도 혼자 떠나는 여행 전, 늘 약간은 두렵다. 몽골에 가기 전에 그랬고,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도 그랬다. 이혼 후 혼자 어학연수를 떠난 엄마도 꽤나 두려웠겠지. 나는 자꾸만 32살의 엄마와 함께 떠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슬퍼지고 있었다. 나는 7살짜리 딸도 없고, 이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자꾸만 먼 곳에 두고 온 무언가가 그리운 느낌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로 엄마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27살의 나는 7살때 케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 엄마를 그리워 했듯, 이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 하고 있다. 언제나 처음은 그렇듯 서툴고 안타깝다. 이다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떠나보낸 나 스스로가 서툴고 안타깝지만, 나는 혼자서 힙겹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누군가와 나는 항상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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