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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ug 20. 2022

률루베리와 쑥쑥이

내가 키우는 식물 이야기

  

률루베리 데려온 첫 날.

  이름은 률루베리.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신규교사 연수를 블루베리 마을로 갔었는데 거기서 분양 받아온 블루베리 나무다.   열매가 열릴까 해서 기다렸는데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키우고 3년은 지나야된단다. 아이고, 률루베리에서 열린 블루베리를 먹어보는 날엔 내가 서른이겠구나.

  여름 사이 장맛비를 맞더니 처음 분양 받아왔을  보다 훌쩍 컸다. 급식실에서 나오면 화단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그곳에 갖다 놓고 키운다. 다른 선생님들이 이름표를 보시고는  나무 품종 이름이 률루베리인  아신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엿들을 때면 본의 아니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지은 이름이라 생각한다.

  쑥쑥 커라 나의 률루베리

지금은 이렇게나 컸다.
률루베리를 향한 애착이 상당하다. 식물일지도 적는다


  


  어느  갑자기 부장님께서 고추 씨앗을 발아하시겠다고 일회용 접시에 물에 불린 휴지를   깔아 놓고 말린 씨앗을 올려놓으셨다. 하늘초라는 품종의 고추인데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고추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서 다발로 열매가 열리는 고추라고, 비싸고 예쁜 품종이라 하셨다. 그리고 어디선가 모종을 심는 50구짜리 포트를 구해오셔서 공용 책상 위에 두셨다. 그런데 공용 책상이  책상 바로 옆에 있어서 어쩌다 보니 바쁜 부장님 대신 내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게 되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쑥쑥이라고.. 씨앗이 발아하기 전까지는 촉촉함이 생명이라 하셔서 자주 물도 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새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일주일 넘게 지났을까, 부장님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트레이를 서랍  아래 구석으로 치워놓으셨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서랍에 있는 사무 도구를 꺼내다가 발견! 모종 포트 50구 중 딱 한 곳에서 작게 새싹이 올라온 것이다. 다시 공용 책상으로 옮겨 이번에는 더 열심히 물을 주었다. 새싹이 나자 교무실 선생님들도 재미가 있으셨는지 공용 책상을 지날 때마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오갈 때마다, 고추 모종에 분무기로 물을 주셨다. ‘쑥쑥이’라고 내가 지은 이름도 함께 불러 주시면서.. 딱 한 곳에서 나왔던 새싹을 시작으로 다른 포트에서도 흙이 들썩이며 새싹들이 솟아났다. 결국 50개의 포트 중 한,두 개의 포트를 빼고 모든 포트에서 새싹이 났다.

  교무실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쑥쑥이는 매일매일 ‘쑥쑥컸다. 부장님은 이제 모종들이 햇빛을 받는게 좋겠다며 포트를 밖으로 옮기셨다. 그런데 햇빛이 너무 강했던지 새싹들이 말라 죽기 시작했다. 부장님은 다시 포트를 교무실 공용 책상으로 옮기시면서 ‘역시 쑥쑥이가 엄마 옆에 있어야 되네.’ 라고 하셨다. 너무 웃겨.. 나는 다시 엄마의 마음으로 살아남은 쑥쑥이들에게 물을 주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포트에서 화분으로 옮겨 심고, 각자의 화분에서 쑥쑥이들은 쑥쑥 커서 어느새 하늘로 뻗은 열매를 다발로 맺었다. 급식을 먹고 나오면  률루베리 옆에는 쑥쑥이가 자란다.

폰을 바꾸는 바람에 포트 때 사진이 없다 .. 다 큰 쑥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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