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리며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여기 있는 애들 모아서 청첩장 주려고 하는데 시간이 괜찮냐고. '응, 당연히 괜찮지! 근데 이 사진 우리 어디서 찍은거더라?'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국어 선생님을 놀래켜드린다고 선생님 차에 6명인가, 7명이 몰래 타서 꾸깃꾸깃 껴앉은채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래서 결국은 선생님을 놀래키는데 성공을 했던가, 못했던가?
'우리 이 때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선생님 안오셔서 그냥 우리끼리 다시 나왔었지?' 친구도 그랬던 것 같단다. 머리속에는 마치 오랫동안 사라졌던 물건을 찾은 것 같이, 기다리다 지쳐 우루루 자동차를 빠져 나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음날엔가 그 사진 속에 있는 다른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됐다. '우리 그래서 저 날 선생님 놀래키는데 실패했잖아.' 하고 말하니 친구가 나보고 틀렸단다. 그리고 이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앞서 전 날 머리에 떠올랐던 장면이 조금씩 수정되면서 결국엔 선생님을 놀래키는데 성공한 우리 모습으로 바뀌었다.
기억은 언제나 조금씩 수정된다. 누군가의 머릿속을 거치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안 입는 옷을 정리하다가 10년전쯤 산 민소매 티셔츠를 발견했다. 당시에 정말 마음에 들었어서 아껴입느라 옷이 아직도 새 것 같았다. 이 옷이 누가 사준거더라? 대충 수학여행 가기 전 같이 아주 특별한 날에 샀던 옷인 것 같긴 한데, 이 옷을 사준게 엄마였는지 아니면 내가 산 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났다.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 이 옷 아직도 있어. 이렇게 새 것 같아.' 하고 보여줬을테지만, 엄마는 없다.
엄마가 사준 옷이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이라는 것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가물가물해지기도 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갗이 아리도록 슬픈 기억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쁜 기억도 결국은 다 망각 되니까, 그래서 세상은 살 만 하고 재미가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