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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Sep 21. 2022

'기억이 안난다'는건 다행이다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리며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여기 있는 애들 모아서 청첩장 주려고 하는데 시간이 괜찮냐고. '응, 당연히 괜찮지! 근데 이 사진 우리 어디서 찍은거더라?'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국어 선생님을 놀래켜드린다고 선생님 차에 6명인가, 7명이 몰래 타서 꾸깃꾸깃 껴앉은채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래서 결국은 선생님을 놀래키는데 성공을 했던가, 못했던가?


   '우리 이 때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선생님 안오셔서 그냥 우리끼리 다시 나왔었지?' 친구도 그랬던 것 같단다. 머리속에는 마치 오랫동안 사라졌던 물건을 찾은 것 같이, 기다리다 지쳐 우루루 자동차를 빠져 나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음날엔가 그 사진 속에 있는 다른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됐다. '우리 그래서 저 날 선생님 놀래키는데 실패했잖아.' 하고 말하니 친구가 나보고 틀렸단다. 그리고 이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앞서 전 날 머리에 떠올랐던 장면이 조금씩 수정되면서 결국엔 선생님을 놀래키는데 성공한 우리 모습으로 바뀌었다.


  기억은 언제나 조금씩 수정된다. 누군가의 머릿속을 거치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입는 옷을 정리하다가 10년전쯤  민소매 티셔츠를 발견했다. 당시에 정말 마음에 들었어서 아껴입느라 옷이 아직도   같았다.  옷이 누가 사준거더라? 대충 수학여행 가기  같이 아주 특별한 날에 샀던 옷인  같긴 한데,  옷을 사준게 엄마였는지 아니면 내가  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났다.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   아직도 있어. 이렇게   같아.' 하고 보여줬을테지만, 엄마는 없다.


  엄마가 사준 옷이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이라는 것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가물가물해지기도 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갗이 아리도록 슬픈 기억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쁜 기억도 결국은 다 망각 되니까, 그래서 세상은 살 만 하고 재미가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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