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Nov 13. 2022

걱정의 덫

올 해의 나는 번번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한다.

  머릿속이 어지럽다면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일단은 손을 움직인다. 손을 움직여 무엇이든 적는다. 적을 기분조차 아닐 때는 손을 움직여 청소라도 한다. 설거지를 하든가. 머릿속과 손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손을 움직여 글씨를 쓰고 나면 기분이 나아진다.


  모든 생각에는(또는 걱정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예를들어 어떠한 일이 일어난 후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걱정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30분 정도만하면 충분하다. 혹은 1개 내지 2개의 결론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게 되면 어쩌지? 하고 지구상의 모든 옵션을 끌어다 30분 이상 고민 해 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일상을 살다 보면 발목을 잡는 잡다한 걱정의 굴레들이 늘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몸 컨디션에 따라, 날씨에 따라, 우연적인 상황에 따라 일상이 낳는 생각의 덫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아무 문제 없이 지나치기도 한다. 아주 옛날 일이다. 친구와 밤에 전화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내게 고민상담을 해왔다. 자기가 오늘 직장에서 상사에게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게 혹시나 기분이 나빴으면 어떡하냐, 내일 가서 사과를 해야하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들어보니 전혀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의 말이었고 친구에게 '넌 뭘 그런 것 까지 신경을 쓰냐'며 잊어버리라고 했다. 친구는 무슨 이유에서든 그 날의 걱정의 굴레에 걸려든 것 뿐이었다.


  나는 보편적으로 봤을 때 다른 사람들 보다는 걱정의 덫에 걸려드는 경우가 적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하는 과정에는 미약해지기 마련이라, 삶이 낳는 이 모든 우연들이 덫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올 해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번번이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한다. 2월, 업무분장에 따라 처음 내가 우리 교무실로 배정을 받고 앞자리, 옆자리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을 때다. 이상하게 나는 썩 환영받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왜인지 내게 조금은 차갑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별 다른 이유는 아니고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이 다 남자분들이라 다소 무뚝뚝하셔서 그렇다.) 하지만 낯선 도시, 낯선 장소와 낯선 일터까지 모든 것들이 내게는 일상의 덫 같았달까?


  그러다 3월이었나, 앞자리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선생님이 안계신 줄 알고 내가 내선 전화를 당겨 받았다. 우리 교무실 파티션이 유난히 높아 앞자리가 전혀 안보이기도 하고 그 때 내가 다른 교무실에서 놀러 온 선생님이랑 떠들고 놀고 있어서 앞자리 인기척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내가 전화를 당겨 받으니 앞자리 선생니께서 '저 여기 있어요...' 하셨는데 그 말 속에서 뭔가 묘하게 기분 나빠하시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교무실에서 떠든것도 죄송하고 투명인간 취급 당하셨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 죄송하고 왠지 그 말 이후로 나에게 차가우신 것 같고.. 걱정이 걱정을 낳으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나절을 끙끙앓다가 정말 계신지 몰랐다며 죄송하다고 작은 간식과 쪽지를 함께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라 넘길 수 있는 것들이어도 당시 내가 살던 삶 속에서 나는 걱정의 덫에 걸린 것이겠지.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거리가 생긴다면 생각의 한계를 되새긴다.  생각은  30분만 하는거야. 혹은 이렇게 저렇게 뭉게뭉게 뻗어가는 생각을 잡아다가 하나로 땅땅 결정을 내버린다.   될거야. 순리대로 될거야. 흘러가는대로 두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살다가 보면 모든 길목 길목에는 걱정의 덫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제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