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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Nov 15. 2022

나이 듦에 대하여

  언젠가 동생이 나에게 '누나는 사는게 재미가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작년 이맘때였나, 아무튼 내가 백수이던 시절이다. 나는 사는 것이 더 없이 재밌었기에 '응 재밌어.' 하고 대답했고 동생은 '그건 누나가 돈을 안벌어서 그래.' 라고 했는데 그 때는 돈을 벌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가 있는데 당연히 더 재밌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말이 영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돈을 버는 지금, 내 인생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돈을 벌지 않을 때와는 다르다.


  동생은 군대를 전역하고 나와서 거의 바로 취직을 한 터라 또래에 비해 아주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남자는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나오면 20대 후반부터 취업준비가 시작인데, 동생은 24살에 취직을 했으니 또래 중에서는 가장 이른 편이었다. 일찍 돈을 벌어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옷을 사고 취업걱정을 하며 2년, 3년씩 계속되는 공부를 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걱정 없이 놀 수 있으니 당연히 그 인생은 걱정없이 재미만 있을 줄 알았는데 또 그런 것 만은 아닌가보다. 사는게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단다.


  퇴근이 빠르다는 직업을 가졌지만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때가 많다. 퇴근이 빠르다는 을 다른 말로 하면 조금  많은 시간을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피곤하다고 말할  있다는 . 살려고 돈을 버는데 돈을 벌면서  체력과 시간을  쓰고 나니 막상 진짜  맘대로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사는게 지친다. 때때로 내가 죽을  까지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해서 다달이 월급을 받는... 이걸 계속 해야된다고 ? 진짜? 아득하고 깜깜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아빠는 어떻게 지금까지 돈을 벌고 있는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확실한건 작년과 비교 했을 때 올 해의 시간이 2배 혹은 3배정도 더 빨랐다. 더 재밌어서, 더 행복해서, 이런 이유라기 보다는 온전히 내 맘대로 쓰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버려서 그런 것 같다. 작년엔 하루 24시간을 모두 내 마음대로 썼다면 올 해는 하루 중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3시간에서 4시간 남짓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니 일주일은 꼬박 모아야 24시간이 겨우 나올까 말까다. 그러다 보니 인생 흘러가는 속도가 작년이랑 비교 할 수가 없이 빠르게 느껴진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겠지?


  퇴근을 해서 저녁 먹을 힘도 없어 이불에 누워있을 때, 어쩌다 평일에 약속이라도 잡힌 날에는 내일 출근을 걱정하며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갈 때, 술을 마시기 전에 편의점에 꼭 들러 숙취해소제를 챙겨 먹는 나를 볼 때, 밤에 야식을 먹으며 내일 새벽에 못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 할 때, 월급 날 집에 뭘 사가야 하나 고민을 할 때, 다음 달 카드 값을 걱정하며 미리 날아오는 카드명세서 보기를 두려워 할 때, 집에 있을 때는 아무 연락도 받지 않고 체력을 비축하고 싶을 때, 얼마 안되는 돈을 적금통장에 넣으며 얼마 안되는 마음의 위안을 얻을 때..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자꾸만 하나 둘 늘어 내 일상을 채운다. 나이 듦에 대하여 생각을 하며 잠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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