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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Nov 22. 2022

책에 표지를 입혀야겠다

  사랑하는 책이 몇 권 있다지만 제일 사랑하는 책을 꼽으라면 나는 김승희의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을 꼽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책에 대해 설명 한 적은 몇 번 없다. 이상한 심리다. 말로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설명한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아끼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25년 만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라 느껴졌던 책. 엄마의 책장에서 발견하고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읽었던 책. 이제는 엄마의 책장 속이 아닌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이런 책을 찾아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얼마나 사랑해야 이 책을 빌려줄 수 있을까? 한 때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책. 표지 뒷편에는 엄마가 나와 전화 통화를 하며 급히 메모 해 놓은 내 여권 번호가 적혀있다. 연필로 적은 글씨가 손때를 타며 번지고 옅어질 무렵 한 때 엄마가 살아있었다는 증거인 엄마 글씨가 바래가는 것이 두려워 글씨 위에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가뭄 든 나날처럼 인생의 땅이 쩍쩍 갈라지는 때에 나는 이 책을 찾는다. 한 문장만 읽어도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투둑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문장마다 갈증을 해소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났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나면 누가 그를 기억해주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엄마를 보내고 나서 알았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내 살점들이 엄마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낳을 누군가가 또 나를 그렇게 기억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불멸이 아닌가?


  책에 표지를 입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마음이 찡해져 장소를 불문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책장을 눈으로 스칠 때 마다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책 표지 어디엔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손길이 흐르는 세월 속에 다른 이들의 손길로 덮이는 것 같아서. 책 표지를 입히다 말고 나는 신경숙의 <외딴방>의 한 구절 속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상처가 딱딱해지지 않았나보다. 나는 무엇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중략)이미 딱딱해진 상처라면, 이미 극복한 일이라면, 이렇게 자꾸만 눈물이 고일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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