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에는 청공이 있다. 다른 악기들에는 없는 것이다. 청공은 악기 맨 위에 위치한 '취구'와 손가락으로 막는 구멍인 '지공' 사이에 있는 구멍이다. 이 구멍은 직접적인 연주를 위한 구멍이라기 보단 얇은 대나무 잎을 덮어놓기 위한 구멍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나무 잎에서 추출한 얇은 막을 덮어 놓는다. 취구로 바람을 불면 청공을 거쳐 그 위를 덮고 있던 얇은 막이 떨리면서 특이한 소리가 난다. 음이 높아질 수록, 음량이 커질수록 이 막은 더 빠른 속도로 떨린다. 그 때 대금만이 낼 수 있는 음색이 더 돋보이게 된다.
내가 가진 예민함 대해 생각 해 보곤 한다. 때때로, 아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특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기억 하는 듯 했다. 내 친구들도, 가족들도, 만나던 남자친구들도 나보고 조금은 특이하다고 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는 한 번 보면 까먹기 어려운 사람이란다.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나는 솔직하고, 가감 없고, 뜨겁고 또 차가운 그런 사람. 끓어오르는 나의 열기에 내가 데여 성한 구석이 없는 그런 사람.
나의 특이함은 예민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날씨, 풍경, 배경 음악, 그 날의 몸 컨디션, 내가 지금 해결해야하는 일 같은 일상 속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본래보다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거다. 오르락 내리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나 자신이 감당하기에도 힘들 때가 있으니, 나의 하루는 나 자신을 다스리다보면 끝나 있다.
공원을 걷다가 화단을 꾸며 놓은 것을 보았다. 한 가지 종류의 꽃으로만 심은게 아니라 높이도 종류도 다른 꽃들이 산발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분명 공원 화단이니 누군가 일부러 꽃의 위치와 높이, 종류까지 계산해서 심을 것일테지만 적어도 그 화단 안에서 만큼은 인적이 드문, 탁 트인 들판 위에 자유롭게 핀 꽃들 같았다. 보기에 참 좋았다. 들쑥날쑥한 높이에서 순박한 낭만을 느꼈다. '여기 화단은 들판같네요. 꽃들이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려요.' 이렇게 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 한다. '그런 것 까지 보세요?'
그런 것 까지 보고, 그런 것 까지 듣고, 그런 것 까지 생각하는 나는 예민하고 그래서 쉽게 지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은 그 폭이 크다. 어찌됐건 대부분의 일상이 지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입김만 불어도 달싹거리는 청공 같은 것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 틀림 없다. 세고 여린 입김에 밤낮없이 달싹거리는 나의 대나무 잎은 감수성이자, 예술이자, 음악이 된다. 가끔은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휩쓸리듯 살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안에서는 늘상 바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타고나기를 이렇게 타고났는데 어쩌겠나. 대금의 음역은 모든 관악기를 통틀어 가장 넓다. 내가 경험 하는 감수성의 폭 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