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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Nov 23. 2022

입김에도 달싹거리는 감수성

  대금에는 청공이 있다. 다른 악기들에는 없는 것이다. 청공은 악기 맨 위에 위치한 '취구'와 손가락으로 막는 구멍인 '지공' 사이에 있는 구멍이다. 이 구멍은 직접적인 연주를 위한 구멍이라기 보단 얇은 대나무 잎을 덮어놓기 위한 구멍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나무 잎에서 추출한 얇은 막을 덮어 놓는다. 취구로 바람을 불면 청공을 거쳐 그 위를 덮고 있던 얇은 막이 떨리면서 특이한 소리가 난다. 음이 높아질 수록, 음량이 커질수록 이 막은 더 빠른 속도로 떨린다. 그 때 대금만이 낼 수 있는 음색이 더 돋보이게 된다.


좌측: 대금사진/우측: 청공, 청공 가리개로 가려져있고 청공을 덮은 막은 대나무 잎에서 추출한 것이다


  내가 가진 예민함 대해 생각 해 보곤 한다. 때때로, 아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특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기억 하는 듯 했다. 내 친구들도, 가족들도, 만나던 남자친구들도 나보고 조금은 특이하다고 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는 한 번 보면 까먹기 어려운 사람이란다.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나는 솔직하고, 가감 없고, 뜨겁고 또 차가운 그런 사람. 끓어오르는 나의 열기에 내가 데여 성한 구석이 없는 그런 사람.


  나의 특이함은 예민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날씨, 풍경, 배경 음악, 그 날의 몸 컨디션, 내가 지금 해결해야하는 일 같은 일상 속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본래보다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거다. 오르락 내리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나 자신이 감당하기에도 힘들 때가 있으니, 나의 하루는 나 자신을 다스리다보면 끝나 있다.


  공원을 걷다가 화단을 꾸며 놓은 것을 보았다.  가지 종류의 꽃으로만 심은게 아니라 높이도 종류도 다른 꽃들이 산발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분명 공원 화단이니 누군가 일부러 꽃의 위치와 높이, 종류까지 계산해서 심을 것일테지만 적어도  화단 안에서 만큼은 인적이 드문,  트인 들판 위에 자유롭게  꽃들 같았다. 보기에  좋았다. 들쑥날쑥한 높이에서 순박한 낭만을 느꼈다. '여기 화단은 들판같네요. 꽃들이  어울리는   어울려요.'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다. '그런  까지 보세요?'


  그런 것 까지 보고, 그런 것 까지 듣고, 그런 것 까지 생각하는 나는 예민하고 그래서 쉽게 지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은 그 폭이 크다. 어찌됐건 대부분의 일상이 지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입김만 불어도 달싹거리는 청공 같은 것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 틀림 없다. 세고 여린 입김에 밤낮없이 달싹거리는 나의 대나무 잎은 감수성이자, 예술이자, 음악이 된다. 가끔은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휩쓸리듯 살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안에서는 늘상 바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타고나기를 이렇게 타고났는데 어쩌겠나. 대금의 음역은 모든 관악기를 통틀어 가장 넓다. 내가 경험 하는 감수성의 폭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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