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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miverse Sep 27. 2020

P15-누군가 살아가는 방법

제각각의 삶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후회, 비교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현실을 못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고, '미디어'의 역할을 하면서 개인의 생각이나 삶을 드러내고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생겼다. 내가 오늘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얼 먹고 마셨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인터넷 속도와 하드웨어의 발전도 여기에 일종의 '기름'을 부어서, 인스타그램만 열어봐도 고해상도의 사진과 영상으로 누가 어디서 무얼 했고, 어떤 풍경을 만났고, 오늘의 날씨가 어땠는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거의 순식간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쉬워졌다. 내가 열심히 돈을 모아 기껏 국내로 여행을 왔는데, 어떤 사람은 어제 나와 만나 수다를 떨었는데 아무런 준비없이 해외로 떠나 그곳의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사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색상 별로 하나씩 사고 있다.


어떤 파인애플을 고를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


상대적 박탈감


아마 쉽게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이 상대적 박탈감일 것이다. 분명 나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고,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있지만, 피드에서 보이는 사람의 삶이 더욱 좋아보이고, 부럽고, 나는 (당장은)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괜한 박탈감과 소외감.


어제 저녁의 서촌 안주마을.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삶이 아닌가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나 비교를 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면 좀 바보같은 면도 있는데, 예를 들어 당근마켓에서 산 모니터에 약간의 흠집이 있어도 구입을 후회하지 않는다. 반품을 하겠다고 연락하고 신경을 쓰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이 모니터를 많이 사용해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흠집이 모니터의 기능이나 역할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어딘가를 여행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왔는데 알고보니 바가지를 썼다고 해도, 그만큼의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을 가졌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자체가 소셜 미디어 채널 속에서 움직여야 하고, 누구나 '선망'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상대적 박탈감'이 가랑비에 바지젖듯 스멀스멀 젖어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후회나 비교를 하게 되기도 한다. 뭔가, 그런 날에는 지나가는 좋은 차 - 드림카까지도 아니고, 어쨌거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은 차 - 를 봐도 부럽고, 개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 보이기도 한다. 소위 '인플루언서'의 삶은 '그들은 인플루언서니까'하고 닿을 수 없는 수준의 삶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오히려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닿을랑 말랑한 것들에 그런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게 든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것이 내 삶 속의 후회와, 내 삶과의 비교.


알지만 잘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얼마 전의 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SBS스페셜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 그리고 더욱 많은 투자 수익을 위해 노력하는 주변의 사람들, 건너건너의 사람들- 모두를 응원한다. 나도, 나 스스로 응원해서 조금 '더 좋은' 삶을 살고 싶다. 개개인의 '좋음'과 '적절함'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수준에서 만족할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좋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중간중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좋은 삶'인지 아니면 '또 다른 돈'인지.


그 생각의 확장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사는 삶은 '내가 좋은' 삶인데, 자꾸 그런 상대적 박탈감에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고 내 삶을 '나쁜' 혹은 '별로인' 삶으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주변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어쩌면 나도 좀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삶과의 비교, 그리고 '후회'.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걸 팔고 이걸 샀더라면, 내가 거길 갔더라면, 내가 그걸 먹었더라면-




나도 저런 '상대적 박탈감'과 '후화', '비교'에 젖다보면, 다른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 저런 삶을 살기 위해서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아, 그걸 했었어야 했어, 이건 하지 말았어야 했어- 생각의 한계라는 것은 없고,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다른 삶'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쓸데없는 긍정까지 작용을 하면 그 삶이 마치 내일 당장 실현될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몽상이지


아, 이걸 하면 내일은 이게 저만큼 성장할거고,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기겠군?


하지만 어림없다. 내가 만족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한다. 흔하게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부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시간을 쪼개쓰고, 어떤 식으로 생각을 정리해두고, 사진을 하나 찍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지.


우리가 보는 앱 화면은 하나일지 몰라도, 거기에 갈려진(...)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시간과 돈은 엄청나다


나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현실을 못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 스스로의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산다'보다는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하지만, 여전히 '몽상'에 빠져 있다. 현실을 못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누구나 좋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남들의 '선망'을 받기를 원하고, 언제나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분명 어떤 누군가도 나의 삶을 부러워하고, 비교하며, 자신은 왜 그러지 못했나 후회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셜 미디어와 하드웨어의 발달로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자극'으로, '후회'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가이드'로, '비교'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현재의 '계측 단위'로 바꿔서 생각한다면, 한 계단 올라간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결론 : 나 스스로부터 잘해보자-라는 결심(...)의 반성문.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본다거나, 커뮤니티에 참석한다거나, 다양한 아티클을 보면서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난 왜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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