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쑈핑은 왜 안되었을까
의도한 것은 아닌데, 제목이 자꾸 노래 제목이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그럴 거, 맨 마지막에 유튜브 영상을 붙여보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들썩이는 설 연휴, 계속 집에 있자니 몸이 찌뿌둥하기도 해서 Kickgoing을 타고 코엑스에 들렀다. 입구에는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고, 마스크를 쓴 사람도 있지만 생각보다는 한산한 스타필드 코엑스.
스타필드 코엑스에는 보통 '목적'을 곧바로 달성하기 위해 둘러보지 않고 움직이는 편인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경하기 좋아하는 나 조차도 길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름 '살아있는 GPS'라는 평을 받는데도 복잡해서 살포시 헤맬 정도라면...(절레절레)
그나마, 가끔 가는 코엑스에서 가아끄음 구경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삐에로쑈핑.
(삐에로'쇼'핑이 아니라 삐에로'쑈'핑이다)
신세계가 야심차게 오픈한 첫 매장이기도 하고, 오픈 초기의 열풍을 기억하고 있어 가아끄음 둘러본다.
그리고 최근에 들은, 신세계의 삐에로쑈핑 철수 소식.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싶어 둘러보러 다녀왔다.
왜, 그들은 안되었을까.
삐에로쑈핑이 처음 오픈했을 때, 언론의 집중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하는 듯 했다.
신세계 그룹의 '야심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삐에로쑈핑.
당시 신세계 그룹은 이마트와 백화점에 집중되던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 소위 '전문점'을 한창 오픈하던 시기였다. 이 즈음을 전후해서 영국의 H&B(Health & Beauty) 브랜드 부츠(Boots), 전자기기 체험 & 판매점 일렉트로 마트(Electro Mart), 홈 인테리어 소품 전문점 메종티시아(Maison Ticia), 수납용품 전문점 라이프 콘테이너(Life Container)까지, 크고 작은 전문점을 시도하고, 오픈하고, 확장을 했다.
삐에로쑈핑은 특히, 1년 간 전력을 다해 준비를 하고 '정용진의 야심작'이라 불릴만큼 노력한 매장이었다. 한국의 '돈키호테'를 표방하면서 지금까지 신세계가 추구했던 '고급' '프리미엄' '전문'의 이미지가 아닌 '키치' 'B급'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다. 워낙 색채가 기존과 다르고, 젊은 사람을 타겟으로 한다는 것을 티 낼 만큼의 색채가 강렬해서 오픈 당시 마케터라면 한 번은 가봐야할 장소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망했다.
삐에로쑈핑은 플래그십 스토어였던 명동점을 1년 만에 철수했고, 논현점도 철수했으며, 본진인 코엑스의 상황도 마치 망하기 일보직전의 상황과 같다.
삐에로쑈핑 코엑스점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이전에는 그나마 보이던 점원들도 아예 없고, 주변에서 둘러보던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를 사기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지나다가 들러 둘러보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왜 망했을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또 다른 유통 실험 중 하나인 삐에로 쑈핑이 성공하기 위해선 애초에 내세운 콘셉트대로 새롭고 신기한 상품 구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르포] 오픈 D-1 삐에로 쑈핑 가보니…'득템' 재미 주는 만물상 (2018.06.27,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80627106000030?input=1195m
그렇다면 사업 초기 목표매출을 초과달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던 삐에로쑈핑은 왜 사업을 접어야 했을까. 이마트 측은 가장 큰 원인으로 ‘임대료’를 꼽았다. “높은 임대료 부담에 수익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사업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삐에로쑈핑의 매장은 임대료가 비싼 곳에만 있다.
...
자! 그렇다면 삐에로쑈핑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돈키호테가 내세운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급소가격’ ‘광대가격’ 등 저렴한 가격을 홍보하는 POP(구매 시점 광고)가 무수히 많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는 거다.
출처 : 삐에로쑈핑은 정말 임대료 탓에 무너졌나 (2020.01.07, 더스쿠프)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33
대부분 내세운 콘셉트인 '새롭고 신기한 상품 구색을 갖추기 못해서' 또는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을 실현하지 못해서'라는 평이 많다. 벤치마킹(이라 쓰고 '카피'라고 읽는다) 대상인 일본의 돈키호테의 콘셉트를 들여오긴 잘 들여왔지만, 콘셉트를 살릴 수 있는 상품 구색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돈키호테는 쇼핑의 재미에 방점을 찍고 있다. 매장을 좁은 미로처럼 만들어 고객들이 보물찾기 하는 느낌을 주는 것. 삐에로 쑈핑도 이 부분을 그대로 옮겨왔다. 직원들 유니폼엔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란 익살스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직원에게 고무장갑의 위치를 물어보니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펀 앤 크레이지(fun&crazy)’는 삐에로 쑈핑이 표방하는 콘셉트다.
출처 : ‘삐에로 쑈핑’이 ‘돈키호테’가 못 되는 이유 (2018.06.29, 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167
분명 가격 경쟁력이 망한 주요 원인은 맞다. 거대 유통기업인 신세계와, 돈키호테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니까. 탄탄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공급사를 가지고 있는 신세계와, 아무것도 없이 재고 혹은 중소기업의 물품을 싸게 박스 째 사입해서 박리다매로 팔기 시작한 돈키호테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망한' 이유는 유통망과 공급의 문제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1) 탄탄한 유통망과 다양한 공급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지만, 삐에로쑈핑에 있어서는 엄청난 마이너스 요인이다.
유통망이 있고 공급사가 있음으로 해서 안정적인 판매물품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다양한 공급사의 물품을 유통망을 통해서 공급받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같은 물품을 다양한 채널로 유통해야하는 이마트 입장에서는 같은 물품을 다른 가격으로 팔기 어렵게 된다. 같은 유통망을 통하면서 오른 가격을, 채널이 다르다고 가격을 다르게해서 카니발라이제이션(일명 제 살 깎아먹기, 자기 시장 잠식)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삐에로쑈핑이 독점적으로 공급을 받는 물품이라고 할 지라도, 모든 것을 다 다루는 이마트 입장에서는 다른 물품과의 가격 수준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2) 돈키호테의 쇼핑에는 재미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삐에로 쇼핑은 '재미'만 가져왔는데, 매우 불친절해서 마음 상하는 '재미'로 가져왔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돈키호테가 쇼핑의 재미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점원들도 물품이 어디있는지 모르고, 미로처럼 매장을 구성하며, 디스플레이도 박스채 쌓아놓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지방과 매장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너무 지방만 다녔나)
점원들은 적어도 대략적으로 고객이 물어본 물품의 섹션과 셀프 위치 정도는 이해하고, 같이 찾아주며, 미로같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섹션 구분과 적절한 분별로 내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초 미로같은 구성은 물건을 쌓아놓고 팔다가 탄생했는데, 고객들이 보물찾기 하듯 즐거워해서 유지했다고 한다.)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특별가 물품이나 세일 물품의 경우 박스 채 쌓아 놓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물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 가격의 경우도 꼼꼼하게 표시되어 있어 가격표가 없는 물건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
삐에로쑈핑의 경우, 처음 핫하던 시절(...)의 경험에 따르면 섹션까지는 안내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안내였고, 자연적으로 생긴 '미로'가 아닌 '의도적'인 미로다보니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나름 정리되어 있다고 하지만, 뭔가 집어 살피기에는 가격과 다른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 '삐에로쑈핑'이 망한 이유는 디테일이다. 삐에로쑈핑은 돈키호테의 '외양'을 잘 챙겨왔으나, 결국은 그 세부의 디테일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일본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지독한 '디테일 집착'이었다. 실제로 일을 하던 시절에도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디테일을 챙긴는 모습을 보면서, '아니 뭐 이런 걸 다 챙기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단순한 티켓에도 기념삼아 가져갈 수 있도록 사진 등을 활용한 디테일, 식당의 수저나 냅킨 등을 놓을 때도 각도를 생각하는 끔찍한 수준의 '디테일' 집착은 고개를 젓게 만들 정도이니.
삐에로쑈핑은 그들의 외양, 즉 하드웨어에 대한 벤치마킹은 완벽했을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내부의 디테일을 챙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망함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일본의 브랜드나 매장을 벤치마킹한 다른 브랜드 혹은 매장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이를 막아내고는 있지만, 점차적으로 디테일을 챙겨가는 우리나라에서 언젠가는 발생할지 모르는 '리스크'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도 디테일을 챙겨보자. 결국 결론은 디테일이니까.
그리고, 삐에로쑈핑에서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들어보자.
삐에로는 디테일을 챙겨 언제 웃을 수 있을까.
* 출처 : https://youtu.be/vwNrL6LSE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