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부인과 방문기
뭐든 검색만 하면 온갖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나까지도 정보의 범람에 일조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검색(남의 경험) -> 내 경험 -> 검색(남의 경험) -> 내 경험을 반복하면서 남의 경험과 내 경험은 확연히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너무 아팠다, 너무 힘들었다는 기록을 읽고 잔뜩 겁을 먹고 그 일을 맞닥뜨린다. 정작 경험하면 별일 아니기도 하고, 나의 경우는 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마다 다른 경험, 인상,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추가로 글로 남기고 박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지나고 보면 부끄러움 천지인 나의 기록과 모습들임에도 기록하려는 이유는 첫째, 훗날 내가 이해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둘째, 감정과 느낌을 객관적인 언어로 기록해 보고 싶다. 이 두 가지의 이유로 글을 시작해 본다.
21년 10월 1일 산전검사를 위해 생애 첫 여성 병원을 방문했다. 가기 전에는 비용 정도만 알아보았고, 대망에 병원 방문!! 집 근처 병원으로 예약하고 방문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등등.. 여기까진 괜찮았다. 초음파 실로 들어갔는데 어두컴컴하고 생전 처음 본 의자... 쇠 집게가 닿는 순간 으악!!!!! 식겁하고 선생님이 그냥 돌아가라고 하셨다. 정신없이 수납하고 이날 진료는 마치고 나왔다. 당황, 무서움에 문전 박대까지 당한 느낌이라 오면서 내내 울었다.(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데, 이날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검사하시는 선생님 입장에서 나의 반응이 당황스러우셨을 테고, 내 입장에서도 생전 처음 하는 검사에 무섭기만 했는데, 그냥 가라는 이야기 대신에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알려주시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같은 경험이라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날이 될 수 있음을 후에야 깨달았다. 질 초음파 보지 않았는데도 산전검사총비용을 냈고, 이 비용에 대해 남편이 아까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검사 결과를 받으러 가지도 않았고, 파일철로 받아보기만 했다.
22년 12월 어느 날, 해를 넘겨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이전 선생님 말고 친절하신 분으로 부탁드렸고, 다행히 그런 선생님을 만나서 크게 위로받았던 날이었다. 초음파 진료실로 갔고, 두 번째 방문이지만 여전히 떨리고 겁먹은 채로 의자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활짝 웃으시며, 높은 텐션으로 인사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검사는 힘들었지만, 자궁도 난소도 괜찮다고 크기와 상태에 대해 봐주셨다. 이전 검사에 대한 결과를 듣지 못했고 병원에서 연락받은 것도 없었는데, 이전 검사받은 기록을 보시며 짚어주실 것들도 다 짚어주셨다. 갑상선 수치가 조금 높은데, 약물 치료해야 한다고... 임신 후에도 가능하니 일단은 보자고 하셨다. (약을 좀 많이 먹어야 하고 약도 비싸다고) 수치가 높으면 태아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이때 전후로 목이 많이 당겼는데 건조해서 그런가 했더니 갑상선 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날 깨달은 것은 같은 검사라도 누구를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긴장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줄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병원과 담쌓은 나 같은 쫄보에게는 더더욱!!
크게 용기를 얻고 2-3개월 자연임신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피검사, B형 간염 접종 예약을 하고 진료를 마쳤다.
2주 후에 걸려온 전화..
갑상선 수치가 좋지는 않다고 하심, 걱정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연임신 시도 기간..
생리 기간 -> 배란 기간을 반복하며 이 기간에 특히 더 예민해졌다.
연말이랑 겹쳐서 여러 걱정, 우울함, 두려움이 물밀듯 했고,
그러려니 무던하게 넘어가기엔
내 생각과 의지가 아직 분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