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은 과거에 있었던 제주 4.3 사건을 독자들에게 재조명시키는 데에 ‘거리감’과 ‘초현실성’을 사용하였다.
먼저 이 소설의 서술자 경하는 4.3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작가인 경하와 제주 4.3 사건의 연관 관계는 과거에 해당 사건과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는 것과, 친구 인선의 엄마가 제주 4.3 사건을 겪었다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경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구전이나 경험이 아니라 여러 역사 사료들을 찾아보면서 해당 사건이 얼마나 참혹한 사건이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독자들 중 다수는 경하와 같이 제주 4.3 사건의 당사자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해당 사건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배제시킨 채 제삼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 책은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독자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사게 만들었다.
비극성과 연민의 감정보다는 사건이 가진 사실성과 참혹성을 부각한 서술은 표현이 일차원적이거나 섬세하지 못한다면 독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했을 것이지만, 고통이 독자에게로 직접 전해지는 것 같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서술로 제주 4.3 사건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제주 4.3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경하가 아닌, 인선의 엄마 정심이다.
서술자 경하와 정심과의 관계는 굉장히 멀고, 그렇기에 독자들 또한 정심이라는 사람에 대한 먼 거리감을 가지고 그녀가 겪은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독자들은 정심과의 먼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겪은 일을 따라가다 보면 제주 4.3 사건에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정심에게 공감하게 된다.
이는 정심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 경하가 친구 인선의 새의 죽음에 자신의 새가 아님에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저자 한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잘 모르는 제삼자의 고통에도 공감을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 책을 현실처럼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현실감과 생동감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적절한 제주도 방언 사용과 제주도 문화에 대한 서술로 소설의 현실성과 생동감을 높였다.
책의 배경이 가상의 세계가 아닌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제주도가 주된 배경이 되기 때문에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색이나 문화 등이 적절히 표현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모방론적 관점에서 소설을 보았을 때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들에게 ‘삼촌’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데, 소설 속 경하도 이 점을 생각하며 제주도민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는 내용이 있다.
해당 내용처럼 소설 속에서 중요한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고증을 챙김으로써 경하를 포함한 소설 속 인물들과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느껴 지진다.
책의 시작이 경하의 제주 4.3 사건에 관한 꿈일 정도로 경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악몽이나 환각을 자주 겪는다. 이는 1인칭 시점의 서술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서술의 특성과 만나서 해당 글이 현실인지 꿈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는 죽은 것으로 서술된 새가 살아나게 되는 2부부터 심화된다. 2부부터는 경하와 함께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는 친구 인선이 등장하며, 그녀가 자신의 엄마가 겪었던 4.3 사건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된다. 이러한 현실과 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린 초현실적 서술은 죽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별이 아니며 현실과의 단절이 아니라는 책의 주제를 전체 분위기 속에 잘 녹여주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경하와 인선이 제주 4.3 사건과 관련하여하기로 약속했던 프로젝트의 이름을 ‘작별하지 않는다’로 정할 때 작별을 무한정 미루는 것인지 아니면 작별이라는 것이 완성되지 않는 것인지 인선의 입을 빌려 물음을 던지지만 경하는 답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독자들 개인에게 해석해 볼 여지를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히 해석한다면 잊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책 전체를 놓고 보면, 이는 단순히 잊지 않겠다는 것을 넘어서 잊지 못하기 때문에,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인선은 경하에게 가족들을 잃고, 오빠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엄마 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심은 오빠를 찾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오빠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작별하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심은 잊지 못하는 오빠를 찾기 위해 수십 년을 바친다.
이는 단순히 잊지 “못한다”는 수동적 행위가 아닌 오빠를 찾겠다는 능동적 행위, 즉 작별하지 “않으려” 하는 정심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경하 또한 마찬가지이다.
경하는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책을 출판하기 전,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악몽이 책을 출판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서둘러 출판하려 한다.
그러나 책을 출판한 이후로도 악몽에 여전히 시달리는 경하는 오히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스스로를 반성한다.
이는 악몽과 작별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쓰기로 한 책임감을 가지고 악몽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바뀌게 된다.
이후에도 앞서 말했든 인선과 함께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하려는 등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으려, 작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제주 4.3 사건의 참혹함을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은 어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 감추고 싶은 역사, 참혹한 역사, 그렇기에 잊고 싶은 역사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 한강은 이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사건의 피해자들을 잊으면 안 되기에 우리는 이들과, 그리고 이 사건과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생각할수록, 그리고 직면할수록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이 역사와 작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