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생 일지
1. 외로운 학교
“어떤 사람이 선생님이 돼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알록달록한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알록달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범생이들이 선생님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 때문에 학교는 범생이가 아니면 매우 외로운 곳이 되어버린다.”라는 말을 해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현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교수/선생님들의 이전 직업이 학생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하던 글이 떠올랐다.(너무 오래 전이어서 원본은 못 찾겠다)
학교에는 누구 하나 무채색인 학생이 없다. 다들 각자의 흥미가 있고, 각자 재밌어하는 분야가 있다. 대학교만 가도 하나의 전공 밑에 모여진 사람들이어서 어느 정도 비슷해지고 만나는 사람끼리만 자주 만나게 되어서 틀이 생기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알록달록함을 바라보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해야 그런 학생들을 다 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2. 왜 사회는 교사에 대해서 다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것인지. 교사에 대한 편견.
보통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몸이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것이 전혀 아니고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이라고 선생님들께서 말씀해주신 게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되었다. 수업시간 장시간 서 있고 말을 계속해야 해서 목, 다리가 쉽게 붓는다. 내 몸이 걸어 다니는 스피커가 된다.
또 선생님이라고 하면 조금 내성적인 사람이 떠오르는데 실제로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다니는 30명의 눈빛을 극복하면서 공백 없이 계속 수업을 해야 하는 직종이다. (50분 내내 내가 움직이면 내 앞 30명이 다 내 움직임을 테니스공 트래킹 하듯이 나를 바라본다. 초반에는 은근 daunting 한 경험이다.) 수업 두 번 이후에는 괜찮아졌지만 발표 공포증 같은 것이 있으면 정말 힘들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선생님은 ‘편한 직업’이라는 편견이 생긴 걸까 생각해보니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 보통 사람들은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래서 서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선생님이 앉아서 수업을 경청하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분리된 공학. 여학생들의 높은 불안 지수.
내가 간 학교는 공학이지만 아예 남자 반 여자반이 분리되어 있는, 또 그들 간 접점이 따로 없는 "분리된 공학"이었다. 그래서 반들 간 극명한 차이를 느꼈다.
남자 반을 가르칠 때는 한마디로 늪을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만 하면 어디선가 드립이 날아와서 그 한 명을 조용히 시키면 어디선가 또 드립/집단적 독백이 날아와서 끝나지 않는 두더지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여자반을 가르칠 때는 발표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말하는 것은 근육처럼 평소에 계속해봐야 서서히 느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하고 싶다고 생겨나는 스킬이 아니다. 또 사회는 외향성이 강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우대하기 때문에(우선 손들고 봐야 하는 이 거친 세상..) 학생들이 발표하는 연습을 더 하고 사회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카이 캐슬의 강예서 캐릭터가 현실의 많은 여학생들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 많은 여학생들은 대부분 정말 꼼꼼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이 높은 불안 지수는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내가 FM대로 살아도 내 인생이 FM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그걸 manage 할 수 있는 유연함을 학생들이 가질 수 있길 바란다.
4. 진심으로 모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최근 나온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큰 테마는 불완전한 나를 채우기 위해 남을 먼저 사랑(‘추앙’)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누군가를 저렇게 오점 하나 없이 return 하나도 바라지 않고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는데 가장 가까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교생 기간 때였다.
교탁 앞에 서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다 들어온다. 교생 오리엔테이션 첫날 담당 선생님께서 모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속으로 ‘어떻게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겠어’ 싶었다.
하지만 교탁에 서면 어린 얼굴에 압도당하게 된다. 너무 어리다는 게 얼굴에 보여서 내가 이기거나 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압도당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복을 순수히 빌어줄 수 있게 된다. 난 그때만큼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위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내 행복이 아닌 남의 행복을 빌게 되니 일상이 가벼워졌다.
5. 희생.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만 가끔 몇 가지 사건들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앞에서 나는 helpless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 큰 speech, essay가 있으면 proofreading을 부탁드리는 것이 거의 국룰인 선생님이 계셨다. 나도 몇 번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아는 글쓰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누구든지 능력을 인정하는 그런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한테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은 선생님이었다. 학생들한테 인기도 많아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하교 후 항상 교실이 그냥 놀러 온 학생들이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은 나도 하교 전에 교실에 잠시 들렀는데 그때도 학생들한테 주제 불문 이것저것 다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나도 모르게 한 말이 튀어나왔다.
“I think your life would’ve been miserable if you hadn’t become a teacher”
"선생님이 선생님이 안 되었으면 비참했을 것 같아요"(ok it sounds so much worse in Korean)
그 순간 내 옆에 있던 친구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고 선생님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miserable이라는 워딩이 너무 셌나? 선생님의 다른 인생을 judge 하는 게 arrogant 해 보였을까?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너무 친해졌다고 착각해서 내가 이렇게 선을 넘는구나” 같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근데 갑자기 예상외로 선생님이 내 두 손을 꽉 잡고 “Thank you, thank you”라고 말을 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후 나는 하교 버스를 타기 위해 나왔고(lame ending, but a girl gotta catch her bus) 선생님한테 짧은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 말을 그 단어 그대로 해주길 평생 기다려왔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교직 생활을 하며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인지, 더 큰 이익을 좇아야 하는 것인지, 그러기 위해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와 같은 고민들이 파도처럼 종종 찾아왔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이제는 더 이상 그 파도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교생을 하면서 그 파도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교사는 봉사직(희생직), 전문직, 노동직 3개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다.(ex. 교사가 월급이 많다고 하면 ‘봉사’를 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이렇게 월급이 높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특히 이 세 가지 측면 중에 교사는 희생직이라는 점을 나는 같은 수업을 9번째 가르칠 때 느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하나도 없다. 가르치면서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도, 더 열심히 가르치면 더 많은 수익을 내지도 않는다. 학생들을 위한 곳이기 때문에 내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학군단 단장님께서 장기적으로 군생활을 버티려면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본인은 그것을 희생이라고 정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남을 도우며 살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 거의 치팅식으로 빨리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함이 있다. 하지만 내가 같은 수업을 9번, 10번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꼭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희생의 방법인지,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교생 일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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