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트라우마.

"정서 생태계"를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것.

by 류서연

어느 날 물고기가 키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작정 물고기 판매점을 방문하였는데 사장님이 한 말 중에 굉장히 의외인 말이 있었다. 물고기를 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항 물, 사료의 퀄리티가 아니고 어항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들이 있는지라는 말이었다. 물고기를 키운다는 것은 좋은 미생물 생태계를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구피와 같은 물고기를 기르려면 구피를 어항에 넣기 전 최소한 일주일은 수생식물 등을 미리 넣어 어항을 꾸미고 미생물들이 자라기를 기다려줘야 하고, 또 환수(어항 물을 교체해 주는 일)를 할 때도 부분적으로만 교체해줘야 하고 아예 전체갈이를 하면 물고기들은 먹고 자랄 미생물들이 없어 금방 죽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유학생 트라우마'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트라우마는 유학생들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아예 새로운 곳으로 혼자 이주하게 되면서 '정서적 생태계'를 잃게 되며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집과 밥만 있다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도 그 생태계에 오래 있어야지만 생기는 보이지 않는 지지대들이 있고, 이런 지지대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예 새로운 어항에 넣어지게 되면 금방 죽는 구피에 대한 설명을 듣자,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혼자 이주한 나의 과거가 다시금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자카르타를 떠나고 혼자 한국에 온다는 것은 내 정서 생태계를 다 떠나고 새로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우선 집이 없어서 항상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했었고 보금자리가 불안정하니 몸도 마음도 급속도로 불안정해졌다. 집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다 내가 처리해야 했고 짐들도 혼자 옮겨야 했었다. 혼자 바다에 덩그러니 남겨진 해파리마냥 나는 항상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정말 위급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는 것도 큰 구멍이었다. 친구들이 몇 명 서울에 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버거운 일들이었다는 뜻은 그들에게도 힘든 일들이었다는 것이었고 부탁을 했을 때 어떤 답을 들을지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묻지 않은 부탁들이 많았다. 그래도 정말 힘들 때 몇 번 부탁을 해본 적도 있었는 결론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영역과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이때 많이 체감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부탁만 해야 하는 내 모습도 점점 싫어졌다.

보통 외국 대학에서는 이런 국제 학생들을 지원해 주는 오피스가 따로 존재를 하지만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는 본가가 한국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프로그램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너무 극소수이기 때문에 신경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외로워서 사람도 만나보려고 했지만 나를 나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사람은 정답이 될 수가 없었다. 또한 한국 특성상 내 나이 또래들은 아직 대부분 평생을 가족과 같이 산 사람들인데 이렇게 인생 경험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도 겉으로만 대화가 이어갈 뿐, 정말로 내가 이해될 수는 없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었다.


나를 도와줄 미생물 하나 없이 리셋을 하니 매 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그동안 취득한 모든 아이템들이 리셋되고, 남들은 옆에 도와주는 캐릭터들이 있을 때 나는 그저 혼자서 장애물을 건너뛰고, 혼자 플레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20대 초반을 돌이켜보면 허우적대고 그냥 무작정 버티는, 가혹한 시간들이었다. 특히 한국은 가족 중심의 사회여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고, 그래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가족에 속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이제는 이런 것을 알게 되었으니 혼자서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유학생들이 미생물을 기르는 법을 배워, 미생물 가득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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