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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 Oct 10. 2021

자카르타 6개월 어학연수를 갔다 왔다 #인도네시아

회고록

너무 행복했던 2018-2019년 인도네시아 어학당 Universitas Katolik Indonesia Atma Jaya BIPA 코스 회고록



1. Expat bubble에서 나오기

해외에 살면서 로컬 문화는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배우고 실제로는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계속하는 expat bubble(외국인 버블)에 갇혀 살며 종종 부끄러움을 느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 중 어쩌다 배운 표현 몇 개로 현지인들과 매번 같은 대화 레벨 수준에 머무는 것, 매번 가는 몰에 가는 것, 매번 먹는 식당에서 먹는 것, 매번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이 루틴에 그저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그때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현생 살기 바빴어서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냥 자기 전에 수면 위에 떠오르는 생각들 중 하나, 변화하겠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실천되지 않는 일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듯하다. 갑자기 대학 입학까지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비었다. 그리하여 Intensive BIPA course에 등록하여 어학연수를 시작하였다.

2, 새로운 언어와 함께 재탄생되는 나라는 사람


수험생처럼 벽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공부를 했다. 어차피 배울 언어이면 차라리 초반에 빨리 단어들을 외우자는 생각도 있었고 아직 수험생활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던 것도 있었다.


내 인생이 넷플 시리즈라고 가정했을 때 어학당을 다닌다는 것은 갑자기 쇼의 언어 설정, 필터, OST, 촬영 구도, 모든 게 바뀌는 것과 같다. 원년 멤버들은 갑자기 다 폰 속에만 존재하게 되고 새로운 조연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과 같았다. 완벽히 새로운 세트장에서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는 언어가 달라지니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주변 사람들이 달라지니 나는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스며들어 곧 과거의 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변하였다. 피부는 더 그을러 졌고 옷을 입는 스타일도 천천히 바꿔져 갔다. 특히 나중에는 영어를 쓸 때도 인도네시아어와 섞어 쓰지 않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정말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를 몸소 느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보통 사람들의 직관적 관념과 달리 실제로 사람이 뇌에 담을 수 있는 단어의 수는 리미트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계속 쓰면 다른 언어들의 영역은 옅게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Bilingual(2개국어)이 사실은 Bye-lingual(0개국어)라는 농담이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인 것이다.)


3. 어학연수를 꼭 가야 할까


흔히 정말 그 나라로 가야지 그 나라 말이 트인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 이유는 배운 것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겨있어서 쉽게 머릿속에서 안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학당에서 배운 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각자의 추억이 담겨 있다. 간단한 단어에도 그 단어를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의 친절함이 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서 ‘썸녀/썸남’이 인도네시아어로 직역하면 ‘애인 후보’인걸 알았을 때 반 전체가 워딩이 왜 이렇게 공식적이냐면서 엄청 웃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또 그 나라에 직접 가야지 목격할 수 있는 순간들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서 직접 보면서도 안 믿기는 자카르타의 심각한 교통 체증,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과장된 모습이 아닌 무슬림의 현실적인 일상, 그 나라의 body mannerism, 비속어 배우기(이걸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어딜 가나 국룰) 등이 있다.
이걸 설명할 딱 좋은 예시가 있는데, 방학 시즌이 시작되고 한국에서 자카르타로 간 후 대충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여러 명이서 모인 식사 자리에는 한국에서 공부 중인 사람이 나 포함 2명이 있었는데 우리 둘만 들어올 때 인사하며 자동으로 몸이 숙여지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이 둘은 정신은 아직도 한국에 있다면서 놀린 적이 있었다. 이렇게 그 문화권의 body mannerism은 시간과 함께 몸에 서서히 배이는 것이지 단어 외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4. 유아적 행복


어학당에는 정말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교환을 온 20대 초 대학생들부터 20대 후반 직장인, 발령 온 파트너를 따라온 30대 spouses들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다 각자만의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초반에는 나이 차이 때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내가 들은 intensive course의 경우에는 매일 수업이 4시간 있어서 사실상 숙제도 같이 하고 밥까지 같이 먹으면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너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니 우리는 금세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냥 서로 얼굴만 봐도 웃긴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서 오는 행복, 먹으면서 오는 행복, 일상을  공유하면서 오는 행복, 도시의 야경 바라보기 등 유아적 행복을 추구하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취할 것도, 잃을 것도 없어서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기 쉬웠던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연락을 하느냐 하면 그러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에는 자주 이야기를 했지만 점점 간간히 사진으로 소식을 전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되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다른 친구들은 다시 직장을 얻었다. 이전에는 일상의 모든 것을 다 공유하였는데 우리는 이제 정말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완벽하게 지나갈 인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하게 따뜻한 기억들은 이후에 그렇지 못한 순간들에 존재 그 자체로 힘이 되어 주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질 때 그때 참 행복했는데 하면서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추억이 되었다. 



5. 나는 미래에 어떤 여성이 되고 싶은지.


National Museum of Indonesia을 방문하였을 당시 남편이 자카르타로 출장을 가게 되어 같이 왔는데 갈 곳을 찾아 여기에 혼자 왔다는 사람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갑자기 자각하게 된 사실이 어학당에 있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스스로가 직장 때문에 온 경우가 많으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온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또 주변 지인들을 봐도 대부분 아빠의 직장 때문에 해외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지 엄마가 발령받아서 오는 경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편했다. 그렇다고 엄마들이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 다 대학을 나오고 한때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그동안은 이 뻔한 사실을 보고도 나는 다르겠지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순간 뭔가 결국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는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참 "열심히" 산 여성들은 많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도 척척 간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간 여성들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이 똑똑한 여자도 내가 꿈꾸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순간 어마 무시한 무기력감과 함께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nding note)

운이 좋은 어학연수 과정이었다. 주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여러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나도 같이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와준 프로그램이다. 분명 이 글을 읽으면서 어학연수를 다짐하게 된 사람도 있겠지만 어학연수가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을 깨달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expat bubble을 나오면서 느낀 것은 나는  결국에는 계속 외국인일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지인이  해외에 살면 좋은 점으로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현지인들이 갑자기 10% 더 친절해진다는 점이라 말한 적이 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친절과 함께 붙는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는 나중에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행 계획을 짤 때도 투어리스트 같지 않아 보이는 투어리스트 컨셉이 인기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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