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여행을 가실 때면, 우리 부부가 부모님이 키우는 시츄인, 쭈리를 맡아주곤 한다.
쭈리가 우리 집에 와 있던 지난여름에 친구 커플이 놀러 왔다. 그중 한 명은 강아지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쭈리가 그의 무릎에 올라가 머리를 묻고 잠에 들었다. 바보처럼 순한 체온에 홀린 그는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래도 우리 집에 쭈리가 올 때마다 이들에게 꼭 알려야 할 것 같다.
강아지의 따스함을 느끼고, 순전한 눈빛과 교감하는 그 첫 순간이 얼마나 설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토이푸들은 크기도 작고 털도 잘 안 빠진다'는 주장을 내세워 아빠와 한패를 먹었다. 아빠를 등에 업고 엄마에게 조르고 조른 끝에, 한 가정집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어둡고 추웠던 밤, 덩치가 산만하고 시커먼 외투를 입은 아저씨가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하얀 강아지를 꺼냈다.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낯설지도 않은지 집 안 곳곳을 바삐 휘젓고 다니던 솜뭉치.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꼬리가 쉼 없이 흔들렸고, 작은 엉덩이까지 덩달아 들썩거렸다.
알 수 없이 간질거리는 마음으로 그간 모은 세뱃돈 18만 원을 내밀자, 아저씨는 그중 만 원을 돌려주었다.
학교를 갈 때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고, 교실에 앉아 있어도 온통 강아지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 강아지를 찾았다.
잠깐 놀다가도 금세 잠이 드는 아기 강아지.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모습에, 그 옆을 숨죽이며 지켰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어여쁘고, 소중하고, 그저 좋아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잠버릇이 심해서 종종 함께 자는 사람의 코피를 터뜨리곤 했다.
그런 내 옆에 반디가 붙어 자기 시작하자, 나는 며칠간 잠을 설쳤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쪽 팔은 아이에게 내어주고 곧게 누운 채, 밤새 얌전히 잘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도 잠꼬대는 할지언정 몸만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에 부모님이 자주 싸웠다. 집안의 분위기는 종종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당시 밖에서 오가는 큰 소리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때마다 반디는 내게 등을 내어주고는 나를 지키려는 듯 방문을 주시했다. 그 단단하고 따뜻한 몸을 안고, 볼을 대고 있으면 불안이 가라앉았다.
친구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도, 대학에 떨어져도,
늘 나를 향해 신뢰로 빛나는 까만 눈을 보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미대 입시 삼수 시절, 온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까지 학원 과제를 할 때면 반디는 내 옆에서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내 팔베개를 기다렸다.
그렇게 초·중·고를 지나 대학까지, 집 한켠에 오래된 피아노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준 내 오랜 단짝.
대학교 입학 후, 나는 새로운 경험과 여행으로 가득 찬 20대를 보냈다. 그 시절에 나는, 노력과 도전 정신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믿었다. 세상이 마치 나와 내 친구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오만하리만큼 부푼 '나다움'으로 대학 졸업전시를 마치고 나서야, 반디의 기침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