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무렵, 그러니까 반디가 1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엄마와 김장배추를 옮기느라 잠깐 현관문을 열어 두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새 그놈이 22층 아파트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콩알만 한 게 엘리베이터를 탔는지, 혼자 아래로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계단을 맨발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애처롭게 그 이름을 부르면서.
온 아파트에 반디라는 이름이 울려 퍼질 때쯤, 1층 경비실 앞에 다다랐다.
새카만 발의 나를 보자마자, 경비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흰 솜뭉치를 들어 올렸다. 조막만 한 강아지가 아파트 입구에서 혼자 쫄래쫄래 나오길래 데리고 계셨는데, 이어서 세상을 다 잃은 얼굴의 내가 뛰쳐나온 것이다.
사람 마음도 모르고 연신 꼬리를 치던 그 말간 얼굴을 다시 품에 가득 안았던 안도감이,
잠시나마 느꼈던 빈자리의 아찔함이, 뱃속부터 떨려오던 울렁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2021년 8월.
15살 노견. 수술이 어려운 위치의 44mm 이상 크기의 폐종양. 부신종양. 췌장염.
더 이상의 병원 치료가 무의미해진 반디를 데리고 본가에서 나의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동네 뒷산을 함께 누비며 내 성장기 운동량을 책임지던 늘씬한 다리가 이제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집요하게 이글거리는 햇살이 한 풀 내려앉으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골목을 돌았다.
말라붙은 몸만큼이나, 까만 눈도 점점 총기를 잃어갔다. 우리만의 공통어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밖에 나와서 좋은 건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할에 충실한 건지,
여전히 나랑 함께 있고 싶은 지, 아니면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 떠나고 싶은 지,
어려웠다.
낮에는 초점 없이 짙은 까만 눈을 간절하게 들여다보고, 밤에는 온갖 노견에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헤집으며 시간을 보냈다.
'솜뭉치 22층 탈출 사건'으로부터 15년이 흘러, 초등학생에서 성인으로 불리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는 그날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누구라도 좋으니, 사라져 가는 아이를 찾아달라고 울부짖고만 싶었다.
여름밤에는 데일 듯 맹렬했던 하루가 지나고 사방에 짙은 어둠이 깔려도
낮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마음껏 햇볕을 그리워하지도, 밤의 서늘함을 탓하지도 못한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끝도 없는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공중에 흩어질 뿐이다.
반디 없이 보내는 3번째 여름이다. 텅 빈 품에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안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그 여름밤이, 그 서글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