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두 명의 사람과 아홉 개의 식물이 산다.
나와 남편은 습관처럼 잎의 처짐이나 메마름을 살펴보고, 겉흙을 만지며 물 주기를 가늠하고, 식물 스스로 떨군 잎을 치우거나 그전에 잘라내기도 한다. 푸르름을 한껏 탐닉하면서도, 인상을 찌푸리며 그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사실 나는 10평대의 작은 신혼집에서 식물 아홉 개와 부대낄 만큼, 원래 식물을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이다.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이었고 나는 취준생이라는 그늘 아래, 작은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결국 반디가 떠났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한여름. 뜨거운 해가 정수리 위에 얹혀 있던 그날,
수많은 반려견 장례 관련 글들 중에서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바로 장례를 치르지 못할 경우, 아이 몸 아래에 아이스팩을 깔아주세요.'
줄줄 흐르는 마음을 다급히 부여잡고 어설프게 뭉친 모래성 같은 모양새로 밖을 나섰다.
거침없이 달리는 차들과 번쩍이는 신호등,
금방이라도 덮쳐올 듯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로 후들거리는 걸음을 디뎠다.
둥지에서 잘못 떨어진 새끼새처럼 잔뜩 움츠린 옆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한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칼날같이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그 틈 사이로 간신히 다이소 아이스팩 두 개를 손에 쥐고는 도망치듯 집에 돌아왔다.
분명.
분명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온기도, 그 무엇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몸. 차가워진 작은 몸을 습관처럼 씻기고, 말리고, 빗질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익숙하고도 낯선 촉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연신 물 온도를 바꿔댔다.
오들오들 날 올려다보던 까만 눈과 다이소 아이스팩이 번갈아 떠올랐다.
차가운 타일 위, 아이 밑에 깔아 둔 배변패드는 금방이라도 풀어질 듯 퉁퉁 불어왔다.
축 늘어지는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명 비스무리한 것들이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다시 그 작은 것을 씻기고, 또 씻기고.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텅 빈 방.
하얗고 작은 먼지들이 공중에 멈춰, 시간마저 고여 있는 듯했다.
그 고요함에 내내 숨이 막혀, 눈이 떠지면 울고 눈이 감기면 잠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식물 몇 뿌리를 주문했다. 작은 생명쯤은 거뜬히 배달되는 세상이다. 당시에 혼자 밖을 나서려면 다짐에 다짐을 거듭해야 했기에, 많은 것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었다.
젖은 거즈로 뿌리를 겨우 감싼 채 문 앞에 놓인 스킨답서스와 스파티필룸 몇 뿌리. 흙도 없고 화분도 없고… 겨우 유리병에 담아 물만 간신히 갈아주었다.
뿌리를 씻어낼 때면 종종 망설여졌다.
찬물로 해야 하나, 따뜻한 물로 해야 할까.
3년 전, 물에서 겨우 생명을 부지하던 식물들이 지금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지르르한 잎을 내보이다가도, 분갈이를 할 때면 상아빛 뿌리를 드러내고는 그 여린 투쟁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움이 깊고 캄캄한 호수라면 자책감은 날카롭게 스며드는 계곡물 같다. 파고드는 냉기에 소스라칠 때마다 치열하게 맞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
지금도 간혹 상아빛 얇은 뿌리를 마주할 때면
흙을 덮고 물을 흘려 넣어주며, 푸르름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