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감성팔이 같아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려서 얼른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잠시 흔들렸던 시선을 정리하려 애쓰며 선배 얼굴을 바라봤다. 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말을 얹었다.
“괜찮아. 합평이 솔직해야지.”
“아, 예. 좀 감성팔이 같은 면이 있어서 제 정서에는 안 맞았어요.”
당연한 말이다. 합평은 솔직해야 한다. 특히나 우리 문학회는 신랄하고 냉정한 합평으로 유명했다. 이딴 게 글이냐, 며 어느 후배가 써온 시를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다던 아득한 선배들의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했다. 타인의 글에 대해 의견을 낸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그 문학회 안에서는 자유롭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허용됐다. 그러한 비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었다. 비판을 하는 입장에서는 글을 쓴 이가 아닌 글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비판을 받는 이는 금쪽같은 내 글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쏟아지면 억장이 무너지기 마련이었지만 독자의 소중한 의견쯤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물론 훌륭한 글에 대해서는 칭찬을 넘어선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나의 글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는 감정을 배제한다는 룰이 무색할 정도로 사납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만큼 솔직하고, 순수했다고 생각한다. 모두 글을 사랑하고 쓴다는 행위 자체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었기에 가능한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나도 그런 문학회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죠.”
‘감성팔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박혀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 같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게 느껴졌던 건지, 그 선배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날 내가 문학회에 가져갔던 글은 ‘내 청춘의 2막’이라는 에세이였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진행하는 수기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었다. 재단에서 도움을 받기 전엔 내 삶이 어떠했고, 도움을 받은 후엔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쓴 글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있었던 일들, 특히 편의점에서 일하며 있었던 일화에 대해 썼다.
생활비가 똑 떨어져 배를 곪기 일쑤였던 날들. 게다가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간대가 하필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로, 가장 배고픈 시간이기도 했다. 유난히 허기를 참기 어려웠던 어느 날, 손님이 먹다 남기고 간 컵라면 국물의 냄새는 정말이지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창고 칸에 들어가 누군가 남기고 간 라면 국물을 마시며 배를 채웠다. 내겐 새 컵라면을 사 먹을 돈 조차도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컵라면 하나를 지금 사 먹으면 내일 점심을 굶어야 했으니까. 컵라면 국물은 그때까지 먹은 모든 국물을 통틀어서 가장 맛있었고, 더럽다던가 비위에 거슬린다던가 하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국물 한 모금에 피로가 씻겨 날아갔달까. 내게는 그만큼 서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자랑거리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생 숨기며 살아야 할 잘못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에서 재단에서 받은 혜택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맥락을 위해 필요한 일화로 담담히 써 내려갔을 뿐이었다. 그래서 문학회 멤버들이 수상 소식을 축하하며 수상작을 합평에 가져오기를 청했을 때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어떤 비평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늘 그랬듯 글에 대한 조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감성팔이 같아서.’
실로 예상하지 못했던 감상평이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론 의아했다. 어떡하란 말이지. 있는 그대로 썼는데 감성팔이라고 한다면. 내가 겪은 그 일이 누군가에게 감성팔이라고 느껴질 만큼 불쌍한 꼴이었단 말일까? 아니면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부풀려 쓴 글이라고 받아들여졌던 걸까? 후자의 경우라면 할 말이 많았다. 담담하게 쓰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만, 내 감정이 정말 삭제될 순 없기에 읽는 입장에서 부풀려졌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 자체를 부풀리거나, 거짓을 쓴 일은 없었다. 오로지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부풀려 썼다고 느낀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내 생활이 그렇게 불쌍한가? 그런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흔한 말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턱없이 큰 몸을 접고 접어서라도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불쌍해 보이는 줄도 모르고. 그런 줄도 모르고 글로 써서 동네방네 떠들었다니.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누가 먹다 남기고 간 컵라면 국물을 마시는 꼴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우습게 상상됐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던가, 더러운 줄도 모르고 자존심도 없는 거야? 라던가. 그렇게 상상되고, 이야기되고, 불쌍했겠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한 점 부끄럼 없노라 자위했구나. 흔한 말로 쪽이 팔린 줄도 모르고.
합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부끄러움과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하는 억울함 사이에서 내내 괴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상을 받은 그 글을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상과 상금을 반납해도 좋으니 아무도 나의 편의점 컵라면 일화를 몰랐던 때로, 나만 그 일을 알고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부끄러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 확신이 없어지자 내딛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내가 딛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마다에 망설임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찹쌀-떡!”
그때, 내 마음에 돌이라도 던지는 듯 들려오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는 가로등 불빛만이 가득한 어둠이었다. 소리는 어디서 들려온 건지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찹쌀-떡!”
다시 한번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에 어지러운 마음을 헤치고 의문이 생겼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인 ‘검정고무신’에서나 들어본 이 정겨운 소리가,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아직도 저런 식으로 떡을 파는 사람도 있었나. 그것도 이런 늦은 저녁, 대학가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지쳤던 마음에 빈틈이 생기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지금 이 시간이면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인 걸까. 젊은 사람들만 있는 이런 곳에서 찹쌀떡이 팔리기는 하는 걸까. 일부러 레트로 감성을 노려서 저런 소리를 틀어놓은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선 어느 늙은 노점상의 소리인 걸까.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상추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에게 느꼈던 것처럼, 미처 지나치지 못하고 쓸 데도 없는 상추를 샀던 그때의 마음처럼 낯설지 않은 측은지심이 훅-하고 덮쳐왔다. 찹쌀-떡, 하고 늘어지는 저 소리에 담긴 고단함과 춥고 배고플 그 일상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슬픈 마음을 만끽하다 나 자신의 지독한 모순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뒤통수를 때린 것 같은 충격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다고?
방금 전까지 감성팔이라는 말에 상처 받았던 내가, 저 찹쌀떡 파는 이가 불쌍하다고?
그 날 이후, 나는 과장을 조금 보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었다. 측은지심은 사랑의 근본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중에 하나라고 했던가. 그 말에는 여전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의 삶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측은해 보일지라도 그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지도 모르며, 측은해 보이는 그 장면이 그에게는 마침내 버텨낼 삶의 역경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랑스러워질 하나의 일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 깨달음은 말할 것도 없이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함부로 하는 동정 따위 아무런 힘이 없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해서 쓰기로 했다. 솔직하고,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