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빠 없는 밤은 어땠니? 아빠는 어제 친구와 시간을 보냈단다. 너희와 함께 살아간 이후 처음으로.
지금까지 아빠는 너희 없이 노는 것이 죄 같았어. 혼자 찬란한 거리에 나가 즐기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마음 놓고 여유롭게 먹는 것. 모두 죄책감이 들었어. 심지어 매달 받는 무료 영화표도 모두 만화 영화로 대체되었어.
혼자 조용히 서점을 거닐고 싶어도 너희와 함께하여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어. 사색하며 몇 시간 동안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너희와 함께 달리기를 했어. 차를 타고 멀리 떠나보고 싶었지만 ‘아이랑 갈 곳’을 검색하고 살았어. 무엇보다 따뜻한 밥을 여유롭게 먹고 싶었어. 하지만 너희 음식을 식혀주고, 잘라주고 다 식은 음식을 정신없이 먹었어. 그리고 후식은 항상 너희가 남긴 음식들. 그렇게 7년이 지났네. 그게 옳은 줄 알았어. 그게 아빠인 줄 알았어.
하지만 갑자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가 친구를 만났거든. 아빠보고 너무 힘들지 않냐고 했어. 가끔은 놓아도 된다고 했어. ‘육아’라는 단어를 꽉 움켜잡고 있던 아빠는 울컥했어. 가끔 너무 힘들거든. 아빠가 아직 어렸나 봐. 너희 앞에서 어른인 척, 너희를 다 감당할 수 있는 척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봐. 아빠에게도 쉼이 필요했나 봐.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진지함이란 시간을 과대평가하는데서 생겨난다고 했어. 아빠는 일분일초를 과대평가했어.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온전히 너희에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소중한 시간을 아빠만의 즐거움으로 채우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나 봐. 아빠 친구는 그런 아빠가 갇혀있는 알을 깨어버렸어.
어젯밤 아빠는 너무 행복했어.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고. 아무런 끊김 없이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어. 노래도 불렀단다?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만화 영화 주제곡이나 동요가 아니라 아빠가 즐겨 부르던 그런 노래들. 10년이 넘도록 가지지 못했던 그런 시간.
아빠가 뭐 했는지 묻지 않아 줘서 고마워. 아빠는 이 시간을 아빠의 서랍 속에 넣어놓고 싶거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서랍속에. 그러면서 가끔 꺼내어 꿈같던 시간을 곱씹으며 살 거야. 그리고 다음을 기다리며 너희와 함께할 거야. 지금 아빠는 여유로운 식사를 바라지 않아. 끊김 없는 친구와의 대화를 바라지 않아. 어제 실컷 했거든. 이제 다시 너희와 깔깔 웃으며 대화할 거고. 너희와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움을 느낄 거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에 행복을 느낄 거야. 너희를 키우는 기쁨을 만끽할 거야.
아빠는 어젯밤 행복했고. 다음에도 그런 시간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야. 너희에게도 이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돌아보자. 시간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자. 너희 자신을 먼저 사랑하자꾸나. 너희의 시간을 소중한 너희를 위해서 쓰도록 하자. 지금쯤 세상의 많은 의무와 기대가 너희를 얽매고 있을지 몰라. 그래도 너희를 먼저 사랑하자. 스스로를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어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