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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수 Mar 21. 2019

평균 회귀 이론과 나선형 계단.

당신의 자괴감 설명서.

2017년 3월 1일부로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날부로 내게 자괴감이 찾아오는 주기도 짧아졌다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게는 평생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한다. (물론, 고용 안정성, 취업 회피, 고급 취미 등 대학원 진학 이유는 다양하나,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고생 때 공부를 곧잘했으며, 대학생 때도 각자 나름대로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 공부를 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리가 없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자괴감과 카페인 과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대학원 생활을 보내게 된다.


나는 지난 주, 자괴감과 자기 연민으로 범벅된 연구 초록을 학회에 보냈다. 2년 간의 혼을 갈아넣은 연구이기에 어느 정도 연구자의 모양새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도교수님 눈에는 석연치 않았을 것이다. 맘에 차지 않는 글을 마무리 지어 학회에 보냈다.




인간은 합리적인가? 합리성에 근거한 거대한 학문이 있을지언정, 그 반대 주장의 근거 역시도 견고하다. 지난 주에 한 강의에서 '평균 회귀 이론'을 접했다. 아니, 영접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평균 회귀 이론'은 변동이 많은 주식 시장 등에서 주로 적용되는 개념으로, 관측치가 많아질수록 평균으로 회귀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길게,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갖고 보면 평균으로 회귀하는데, 사람들은 당장의 기울기만 보며 단편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다. 평균보다 더한 상황도, 평균보다 덜한 상황도, 결국 평균은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다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평균으로 다시 내려가거나, 다시 올라가게 되어있다.


난 2n년간 섬겨온 삶의 방식이 부정되었다. 약간의 당혹감과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퇴행하는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들, 기대치에 미달했던 퍼포먼스도 결국 이 굴곡 위이 한 조각뿐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내가 좌절했던 거였어?


예를 들어보자. 나는 다이어트에 약 20번쯤 도전했고, 그 중 두번 성공했다. 성공했을 때의 몸무게는 47kg, 살이 붙었을 때의 몸무게는 57kg, 그리고 놀랍게도 잘 먹고 잘 움직이는 대부분의 날들에는 52kg를 유지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늘 47kg을 기준으로 다이어트에 도전해왔다.


이뿐만인가. 우리는 날씨를 평가할때도, 기분을 느낄 때에도, 성적을 받을 때에도, 심지어 애정 관계에서도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는가. 최상의 순간을 정상적인 기준이라 착각하고, 그에 미달하는 순간에는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던가.




나의 생각보다 실은 내가 좀 덜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깨닫자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나름대로 내려본 해답은 이렇다. 평균을 인지하되, 그 평균을 조금씩 높여가기 위해 노력할 것. (물론 개인 성향에 따라, 평균대로 살아도 된다.)


이건 또 어떻게 하는걸까? 다행이도, 헤르멘 헤세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We are not going in circles, we are going upwards.
The path is a spiral; we have already climbed many steps.



헤르멘 헤세는 우리가 원을 그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비록, 때로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지라도.) 도돌이표 같은 일상이지만, 우리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각자의 평균을 조금씩 조금씩 높이고 있다.


나는 좌절 속에서 연구 초록을 마감했지만, 덕분에 학술적 글쓰기를 혹독하게 연습해볼 수 있었으니 연구자로서 조금은 성장했을 것이다. 이것을 발판 삼아 어떤 날은 굉장히 글이 잘 써질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나의 평균으로 단정짓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사건의 빈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


평균 회귀 이론과 나선형 계단으로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니, 마음에 여유가 깃들었다.


평균 회귀 현상은 많은 자료를 토대로 결과를 예측할 때 그 결과 값이 평균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성으로, 상관이 완전하지 않은 어떠한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특성이다. (중략) 옛날 사람들은 다 평균 회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거나 "비 오는 날이 있으면 해 뜨는 날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언젠간 평균으로 회귀할 것들에 대해 성급하게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조언이 아니겠는가.

감정 독재 中


나도, 당신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별로인 사람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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