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곳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데 그 도시가 찬란하게 빛나는 서울이라면 서울을 사랑하는 일이 놀라울 것은 없다.
안온했던 부모님으로부터의 둥지를 떠나 서울 안에 내 거처를 찾기 시작했을 때 불현듯 이 도시의 한 자락에 내 등을 누일 곳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 그럭저럭 문제 없이 잘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잡기의 끝판왕은 이 도시에 정착하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나만의 작은 집이자 작은 방을 얻었을 때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부모님의 그늘은 얼마나 크고 두터웠는지 온 몸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눕는 그 방 안에 바로 문이 달려있고 그 문 밖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방 안에 현관문이 달렸다는 그 사실이. 잡초처럼 자랐다고 생각한 내가 사실은 온실 속 화초였나 싶은 순간이었다.
나만의 작은 방을 떠나 두 번째의 집은 남편과 함께였다. 더 이상 혼자 두렵거나 외롭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작은 집.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두 사람의 성인이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을 찾기에 서울은 녹록치 않은 도시였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이 아닌 도시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러자니 이제는 두 사람이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 어려운 이 도시는 우리 두 사람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결혼 전 두 사람의 잔고를 정말 0으로 만들었던 이 집에서 우리는 퍽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 지금의 어려움은 또 마찬가지로 집에서 찾아왔다.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 우리가 불려나갈 수 있는 돈은 이 도시에서는 턱없이 작고 귀여운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세들어 살고 있는 이 건물에서라도 매달리기로 결정했다. 집을 사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결국 돈 주고 사는 물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은 너무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사람 마음이 다 나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 이렇게 사람 사이에 큰 돈이 오가는 거래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우고 있다. 몇 번이나 말이 바뀌는 매도자를, 그 순간에서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중개인을 만난 것은 그저 불운인 것인지 우리가 똑부러지지 못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분노와 후회,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 한 달을 보냈고 여전히 이 모든 것은 진행중이다.
이 도시에 대롱대롱 매달려 밀려나지 않고 싶었던 마음이 처량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날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집을 무사히 마련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