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가 좋다. 쌀쌀맞은 웃풍에도 한 발 디디면 포근해지는 러그처럼.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역시 집이 좋지’란 푸념이 드는 온도. 달력을 셈하는 게 서투르면 놓쳐버리는, 가을이 오기 전 늦여름 같은 정도.
사람도 저마다의 온도를 가진다. 18도의 문장을 던지는 사람, 25도의 무난함을 지닌 사람. 36도의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 그중에서도 36도의 사람은 수첩, 옷, 신발 조차 온기를 풍긴다던데.
그 사람의 수첩에는 분명 우울함보단 달큼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다. 옷장을 열면 늘어나진 않을까 섬세히 포개진 옷이 보일 거고, 문 앞에 벗겨진 신발들도 옹기종기 모여 소외감을 느낄 겨를이 없을 테지. 소박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물건이라서.
그래서 나는 늦여름 같은 사람이 좋다. 회백색 겨울에도 추위를 잊게 해주는 포옹을 가진 사람. ‘당신을 좋아해요’란 말을 듣기에 적당한 사람. 마음을 전하는 걸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은, 사랑이란 단어가 술술 읽히는 사람. 36도인 당신을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