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행복해서 불안할 때가 있다. 사랑이란 걸 할 때면 더더욱. 가령 좋아하는 사람을 안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한 데 두 팔을 푸는 순간부터 있어야 할 게 없어진 것처럼 제법 쌀쌀한 느낌이 드는 경우. 이 경우는 포옹의 온도가 너무 따뜻하면 세밑 한파만치 추워질 수 있다는 증거도 된다. 그 또한 적당해야 좋다는 걸 증명해 주는 반증.
누군가 반증 가능성이 있으면 과학이라던데. 이것도 일종의 과학일 수 있으려나. ‘포옹의 온도에 따른 안정감 추이’란 주제를 과학적으로 연구해보는 것도 좋을 텐데. 어느 정도 온기로 안아줘야 당신이 적당히 따뜻한 사랑을 느낄지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럼 당신을 위한 추상적인 일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볼 수 있을 테니까.
여즉 추상이 가득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어떨까. 현실이 무의미해지려나? 그럼 어떡하지. 무얼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터지려 하는 눈물샘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일까? 또다시 외로움으로 돌아가게 되리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까?
문득 당신이 쌀쌀함을 느꼈다고 하면 무얼 해줘야 할까를 생각한다. “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머리가 아파.”란 말을 할 경우. 음. 이불을 여며주는 일. 따뜻한 차를 우려 주는 일. 데운 물수건을 목덜미와 이마 부근에 대어주는 일. 이런 류의 추상적인 일이라도 괜찮다면 열렬히 해줘야지. 사랑의 온도를 맞추는 일이 조금 서툴더라도 당신이 적당한 기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