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

by 금교준

읽는 행위가 좋다. 책 속에는 오래 삭혀둔 생각이나 버무려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공부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농축하여 경험할 수 있다. 지극히 농밀하게 숙성된 문장을 마주하면 때아닌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아!


또 한 가지, 다수의 글자를 읽다 보면 머릿 폭이 제법 넓어진다. 일방향의 반대주의자를 만나볼 수 있어서. 가령, 어제 만났던 모네는 형태를 거부하고 빛을 예찬했는데. 그 덕에 빛의 진한 맛을 느껴보려는데. 오늘 만난 세잔은 다시 형태의 깊은 맛을 찾는다. 순대국밥에 새우젓을 넣곤 간 보려는데 왼손이 다진 양념을 부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더니. 이것도 나름 괜찮다. 더 깊어지기도 하고.


요즘은 당신을 읽는다. “오”인 줄 알았던 당신은 어느새 “에이”이고, 금세 “오”가 된다. 흑백 주의자였다면 몰라도 채색 주의자에 가까워서 그런지 이런 당신이 내겐 유익하다. 결국 당신에게 더 깊어져 버린 거지. 내가.


어쩌면 점점 품이 넓어져 당신을 더 풍부하게 안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속내를 유추해보는 일. 애정을 추상해보는 일. 행간을 꽃으로 채워보는 일. 이런 것들을 하다 보면 여러 당신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럼 나는 여러 당신을 사랑하게 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측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