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들어설 때면 고독한 냄새가 풍긴다. 따뜻한 밥 내음이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없어서려나.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때나 룸메이트와 같이 지내던 곳에서 나와 살 때. 사랑하는 사람이 묵었다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그런 때를 직면하면 유난히도 사랑이 고파져서 누구든 붙들고 싶어 지는 것이려나.
사람은 적응 능력이 특출 나서 시간이란 것만 쥐고 있으면 뭐든 견딜 수 있다는 데. 그러니까 사랑을 잃어도 실패를 거듭해도 시간이 약이라는 허무맹랑한 위로를 건네는 거겠지. 시간만 넘쳐나면 외로워서 못 살 것 같은데. 그래서야 미소는 언제 짓고, 사지가 찢겨버린 희망은 언제쯤 기워지느냔 말이다.
없다가 생기는 것보다 있다가 사라지는 게 더 아프다. 한 사람의 일생을 삶이라고도 표현하던데. 삶에서 사람을 떠올리는 것보다 사람에게서 삶을 끄잡아 올리는 것이 더 힘겹고 감상적이지 않은가. 전자는 ‘삶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성적인 정의가 될 테고. 후자는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굴곡이 곧 삶‘이라는 감성적인 명제가 될 테니까.
맞아.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 지금 옆에 있는 사랑에게 감사하고 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야. 고독한 냄새를 온기 가득한 것들로 지워주는 사랑을 원 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두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