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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05. 2021

자갈밭의 파도에선 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던 사람

충청남도 당진에는 자갈밭이 무성한 바다가 있습니다. 여느 해안가처럼 보드라운 모래알이 그득한 곳 말고, 제법 거친 질감을 지닌 바다입니다. 지그시 밟으면 사부작- 잔 것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아닌, 바스락- 된 것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죠. 작은 돌들이 서로 밀쳐내는 소리입니다. 때론 너도나도 반가운 마음에 마중 나와주는 것 같기도 해요.      


당신과 그 바다에 갔던 때를 기억합니다. 한창 파도의 우렁찬 모양과 따뜻한 소리를 기록하고 있었죠. 바다에 가면 그런 영상 하나쯤은 남겨두는 걸 좋아하거든요. 나중에 보면 바다 내음이 나는 것만 같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아서요. 다시금 바다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요. 끊임없이 이겨나가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안아줄 바다에게.     


문득 그때 당신이 해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자갈밭의 파도에선 조약돌 구르는 소리가 나네.”     


지금 보니 무척 당연한 말입니다. 당시엔 새삼 다정한 말이라고, 정말 사랑스러운 소리라고 여겼지만요. 맞아요. 그 짧은 순간에도 당신은 당연한 사실에서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찾을 줄 알았던 겁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관찰력이 좋아야 한다던데, 그런 당신에게 질투가 났었으니 확실합니다.)       


그날 밤이던가요. 당신과 울고 웃었던 일이 상기됩니다. 웃기만 할 것 같던 우리가 서로에게 언성을 높였던 날이었죠. 주관이 너무나도 뚜렷한 나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던 당신이 보입니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나와 등을 돌리고 있던 당신도. 끝내 당신이 잠에 들지 못하고 책을 읽던 모습도.      


만난 시간이 적지 않은 연인들은 빵빵한 풍선 같습니다. 서운함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이요. 때론 압력에 못 이겨 터지는 풍선처럼 큰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풍선의 입구를 살살 열어주면 압력은 적당히 유지됩니다. 어여쁜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죠. ‘살살’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연인으로 치면 달래주는 일이에요. 서운함이 새어 나올 때 살포시 안아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연인들의 사랑은 예쁜 모습으로 오래갈 수 있습니다.      


방금 당신에게 다음에도 행복한 시간 보내자며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토록 속상해했던 당신과 여태껏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갈  있는 것은 무엇 덕분일까요. 쉽지만 많은 연인들이 쉬이 하지 못하는 . 포시 안아주는 일과 차가워진 손을 잡아 주는 일이었죠. 그토록 당연한 일을 사랑스러움으로 바라봐준 당신도 있던 거였고요. (삼박자를 고루 갖추면 사랑하지 못할 일이 없겠습니다.)     


자갈밭의 파도에선 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던 사람. 당연한 것에서 사랑스러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 그런 당신에게 미안함은 고마움으로 갚아줘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당신이 오면 마중을 나가야겠단 마음을 먹으면서요.


* 에세이 개인집의 일부(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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