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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07. 2021

종점

온종일 손님들의 다리가 되어 준 버스가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곳. 하루 분량의 연료를 다 소진해버리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 그곳을 우린 종점이라고 부릅니다. 그날의 보람을 느끼면서 여운을 남겨보는 곳을요.(버스도 이 사람은 어땠더라, 저 사람은 유쾌했는데 하며 곱씹어 볼지도 모를 노릇이니까요.)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려면 적게는 수 개, 많게는 수십 개의 정류장을 경유해야 합니다. 차로 가면 십 분 거리를 버스로는 삼십 분 이상 가야 하죠. 천천히 그리고 많이, 이 사람 저 사람을 태우고 내리면서 말입니다. 이런 일은 길을 걷다가도 별안간 생각에 빠지는 저 같은 사람에겐 기분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시간을 조금 더 쓰는 대신에 운전하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서죠. 가만히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일이랄까요. 관찰이라고 부르는 행동이요. 그걸 염두에 둔 채로 버스 한복판을 보고 있으면, 이 작은 땅덩어리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걸 체감할 수 있습니다. 욕지거리가 입에 붙은 사람, 상냥함이 배어 나오는 사람, 순수함이 돋보이는 사람 등등.     


사랑은 버스를 닮았습니다. 가령, 사랑도 종점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사랑의 종점을 결혼이라고, 또 다른 누구는 영원한 사랑 그 자체라고 말할 테지만요. 그뿐인가요. 자꾸만 어딜 들르려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이성과 같이 웃고 대화하는 걸 상상해보세요. 그것도 밤늦게까지.(이런!) 괜스레 질투가 납니다. 결코 바람이 아니라고 해도요.(사람이니까 당연한 겁니다.) 특히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다 갖은 망상에 빠져 심지도 않은 불안을 키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질투, 미움, 좌절, 상실 이런 것들이 마음 위에 모처럼 심긴다고나 할까요.      


아까 말했던 버스 기억나시나요. 여러 정류장을 거치면서도 결국 종점에 도착하고야 마는 버스요.(엄청 열심입니다.) 이번엔 사랑을 생각해봅시다. 이왕이면 그 사람을 떠올려볼까요. 질투가 났거나, 서운했거나, 화가 났던 기억이 있지 않나요. 바로 그겁니다. 사랑은 자꾸만 모 따위의 곳을 경유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내리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열심히 사랑하다 보니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우리 이제부터라도 질투하는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그 사람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내보는 거예요. 내가 당신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요. 보고 싶다고요. 같이 종점까지 가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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