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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10. 2021

여유로움을 논하는 문장들

살다 보니 맘 편히 놀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하루도 고민 없이 쉴 수 없는 사람. 그것이 몇 해 안 되는 사회생활 동안 깨달은 어른의 정의입니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무얼 해야 할까. 미래를 걱정해서 자연스레 하게 되는 일을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첫째, 나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의 들고남의 모양과 거치면서도 따뜻한 파도 소리를 선호합니다. 때문에 주말이 되면 한 시간을 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가고야 마는 겁니다. 그곳에는 직원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카페도 갖고 있습니다.(내 카페가 아니지만, 괜스레 그런 카페 하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테라스에 앉아 바다의 모습을 녹화하고 나면 지구가 내 것인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둘째, 언젠가부터 활자를 눈에 담는 일이 좋아졌습니다. 순백의 종이 위에 새까만 잉크가 휘갈겨진 것뿐이지만, 그 모양이 참 정겹습니다. 네가 흥미로워할 일들이 내게 있어.라는 표정으로 시선을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을 때도 있지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생각보다 간단히 결론을 지어보기도 하고요. “매일 글을 읽고 쓴다는 작가들도 시기마다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고 해요. 어떤 때는 사랑이 담긴 에세이를, 어느 날에는 눈물이 쏙 빠지는 소설을, 그러다 자기 계발서가 읽고 싶어 지는 날도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전문서적이든 문학서적이든 관심이 가는 때가 있을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내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덕분에 존재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사랑이라는  음절은 독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글쎄, 보고서에 ~ 위한 개요이다.라는 글자를 ~ 개요이다.라고 적어 우레 같은 목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 않아도  일을 굳이 굳이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괜히 싱글벙글 웃게 되는 겁니다. 평소였으면 무척 아찔했을 상황마저도 웃음으로 무마하게끔 해주는  사랑인데, 기분 좋은 상황에선 어떨까요. 여유로운 날에 해야  일들이 자연스럽게 구성됩니다.      


그런 날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을 잡을 겁니다. 그러곤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는 겁니다. 목적지는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좋아하는 책 한 권만 챙겨봐”라고 언질을 줘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해 바다로 향할 겁니다. 그녀는 지나쳐가는 표지판을 통해 목적지를 알게 될 거고요. 바다에 도착하고 나면,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조심스레 틀 겁니다. 차 뒤편엔 등을 기댈 수 있는 등받이 베개와 바람을 막아줄 이불을 깔아 뒀습니다. 자. 이제 트렁크를 바다를 향하게끔 하고, 좋아하는 책을 펼쳐들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만큼 여유로운 날은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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