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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21. 2021

찰밥 먹고 싶어요

어느새 묵은 때가 묻은 세면대를 본다. 언제 청소했더라. 생각해보면 오래된 것에 쉽게 익숙해지는 편이다. 오래 쓴 연필, 오래 신은 양말, 오래 사랑한 사람. 어느 하나 예외적인 게 없다. 심지어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는 습관 때문에 누가 아파하는지 눈치채는 것마저 서툴다. 가뭄을 맞은 나무의 옹이처럼 쓸쓸히 썩어가도록 두게 되는 거다.      


어김없이 글을 쓰던 날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생활비를 충당할 일을 해내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을 박박 긁어야만 했던 시절. 주변을 둘러본다는 건 엄두도 못 내던 때. 연필이 부러져도 인내해야 하고 우정을 잃어도 눈물을 아껴야 했던 때. 보이는 건 오직 넘어야 할 벽이나 너머에 있는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던 것들.(사람이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때다.)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보고 싶단 말을 기어코 삼켜내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찰밥 먹으러 올 수 있느냐고. 남편을 떠나보낸 병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면서도 아프단 말을 좀체 숨기던 사람이 말이다. “난 이래도 강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 말을 습관처럼 하던 사람과는 대뜸 낯선 느낌이었다.      


문득 얼마 전 작은 아버지가 말해준 게 생각났다. 그 사람이 일기에 썼다는 말. [숨이 차고 피곤하다 힘이 없다] 감히 추측하건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단 거였다. 참을성이 으스러질 만큼 아파서, 지금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사랑을 잃어버리는 듯한 불안한 문장들이 마구 떠올랐던 거다.     


누구나 익숙함에 속을 때가 있다. 특히 꿈을 위해 걸어야 할 길이 새로 개척해야 할 정도로 휑하다면 더욱. 아무리 그래도 아픈 사람이 아픔을 나누고 싶어 할 때만큼은 외면해선 안 되는 거였다. 바라봐줘야 하는 거다. 다가올 이별에 떳떳해질 만큼 사랑해야 하는 거다. 지구보다 무거운 후회에 깔려버리기 전에. 속절없이 흘릴 눈물들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하니까.      


수도꼭지의 밸브를 샤워기 쪽으로 돌리고 물을 틀었다. 오랜만에 몸을 불리고 때수건으로 박박 긁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이 지우개 똥처럼 밀려 나오는 걸 보며 울음을 뇌까렸다. ‘그러니까요. 할머니. 당신이 해주는 찰밥이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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