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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25. 2021

과한 긴장과 사랑

영화 <콜드워>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사전에 따르면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적대적 긴장은 오고 가지만 군사적인 행위는 부재인 상태’다. 그러나 고래 싸움은 종종 새우의 등을 터뜨리는 것처럼, 이 시대 역시 몇몇 사래를 일으켜 무고한 자들이 켁켁 대곤 했다. 이를테면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중에서도 한국 전쟁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직접 겪으신 일이기도 하다. “갑자기 땅크가 막 밀려오고 그랬어. 아무것도 모르던 산골 주민들은 그 살인기계들의 행렬을 보고서야 짐을 꾸렸지.”


영화 <콜드워>에는 냉전 시대에 온몸을 힘껏 흔들었던 두 사람이 나온다. 손과 발로 세상을 연주하는 남자와 목청을 진동하는 여자. 그리고 또 하나의 감정도 고혹한 몸을 드러내는데, 바로 사랑.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는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잊을 수 없다던 대목이 가슴에 새겨진다. 아무튼 사랑, 이별, 다시 사랑, 또다시 이별을 거듭하는 두 남녀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지난 사랑이 스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던 여자도(대학이라는 문턱에서 손을 놓았던 그녀도), 위한 답시고 여자의 목소리를 녹음했던 남자도(서로가 행복해지려면 사랑보단 취업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그도). 사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결과는 계획과 영 딴판이었던 거다. 이별하고 다시 찾아가고 상처 받고 마음을 걸어 잠그고. 마침내 영화 속의 남녀는 무지한 곳에서 둘만의 사랑을 서약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결국은 또다시 사랑.      


사랑이 대체 무어길래 이토록 사람을 흔드는가. 이런 류의 생각에 사래가 들었다. 뒤늦게 짐을 꾸리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예술가도, 스크린을 보며 지난 사랑을 떠올리는 사람도 켁켁 대야만 했던. 과한 긴장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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