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MBTI를 갖고 있나요?”
요즘 들어 낯선 사람과 친해져야 할 때 자주 활용하는 말이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에게도, 같이 일하게 된 사람에게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엠비티아이에서 말하는 성격 유형은 열여섯 가지나 되기 때문에 한 번 말을 꺼내면 관련해서 늘어놓을 화두가 넘쳤다. E면 외향적이라잖아요, 사람을 엄청 좋아한다던데. F가 감성적이래요. 내가 그래서 힘들 때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해 놓고, 조금만 기뻐지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되나 봐요. J랑 P가 계획이랑 연관된 목록일 걸요? 나는 하기로 했던 일이 어그러지는 걸 극도로 못 견뎌하는데 알고 보니 J더군요. 내가 먼저 이런 말을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상대방도 얼른 자신의 그것을 나열하면서 특징을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고 보니 친해지려면 공통점을 찾으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경험상 (E, I), (N, S), (F, T), (J, P) 네 쌍의 유형 중 하나라도 겹치는 경우는 쌀을 넣고 백미를 누르면 몇 분 뒤에 윤기가 흐르는 밥이 되는 것처럼 당연했던 덕에 공감대를 찾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다.
엠비티아이를 알게 된 건 은이 때문이다. 한 번은 은이가 내게 엠비티아이 설문지를 보냈다. ENFJ. 내가 속한 유형이었다. 별안간 그녀는 ENFJ의 성질이 잔뜩 적힌 웹주소 서너 개를 보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글들을 보니까 당신을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참 신기하네요.”였다. 조금 뒤에는 자신은 이런 유형이라고, 당신도 한번 보라면서 링크를 몇 개 보내줬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그래서 내가 어떤 것 같은데?”라고 동문서답했다. 그런 특징 같은 거 내 것만 알면 되는 거지 뭐, 라는 반응으로 해석될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그녀는 짐짓 서운한 내색을 비쳤다.
은이와 나는 비슷한 문제로 종종 다퉜다. 그녀가 신나서 말하면, 나는 무던한 말투로 답했다. 섭섭하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유독 내가 적극적인 호응을 보였더니 그녀가 “오늘은 반응이 되게 좋네. 이런 거 좋아.”라고 했다. 그때도 나는 그렇게 좋으냐고, '너'가 좋아하니 기쁘네 라면서 무던한 말꼬리로 문장을 마무리했었다. 그녀로서는 애석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가 이런 행동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말하는 건데, 꼭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거냐면서 되려 그녀를 납득시키려 애썼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 사람을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지난주였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은이는 나를 이해해보려고 무척이나 용을 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운한 말을 했을 때도, 꾀병을 부리면서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말했을 때도 모른 척 넘어가 준 적이 있었다. 그럼 나는? 은이를 이해하려고 애쓴 적이 있나. 아니었다. 나를 좀 이해해줘요, 라는 말은 했어도 당신을 이해해요, 라는 문장을 내뱉은 기억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 그녀가 공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녀를 알려고 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 거였다.
그녀의 엠비티아이가 뭐였더라. 아무리 더듬어봐도 기억나지 않았다.